내가 무신론자에서 범신론자로 된 이유.


가장 큰 계기는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들이 폭포와 그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돌면서 어떤 의식에 대해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문뜩 내 안에서 어떤 생각이 맴돌았다. 살아있는 식물이든 어떤 동물이든 혹은 무생물인 흙이나 바위, 폭포에도 어떤 영혼이 있다는 것을.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우연히 SNS에서 본 글이였다. 
집을 자주 가출하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 고양이의 주인이 가끔씩 집 창가로 놀러오는 길고양이들 중에서 덩치가 크고 누가봐도 두목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와 같이 다니는 조금 작은 고양이에게 “두목님, 우리집 고양이한테 얼른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주세요.”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고양이들에게 혼잣말을 할 때마다 항상 집에 나갔던 고양이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 주인은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도 많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 때마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관점에 갇혀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아침밥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이다. 
그러니까 쌀신, 달걀신, 김치신, 김신, 멸치신 등등이 나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어서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힘들때마다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이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항상 나를 걱정해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이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이 공간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이다. 

나는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모르는 신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않아도 이미 내 곁에, 우리 곁에는 신들이 항상 존재한다. 

길 가에 있는 작은 야생화나 이름도 모르는 풀들이, 나무들의 호흡 덕분에 내가 깨끗한 산소를 마실 수 있어서 살 수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이런 존재들이야 말로 신성하고 귀중한 신이며 영혼들이다.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 없는 사람들도, 아스팔트 도로 위로 자동차를 끌고 있는 사람들도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그들이 살아있으면 의미가 있든 없든 어떤 움직임이나 활동을 함으로써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나만의 종교적 세계관을 차츰씩 만들다보니,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납득이 되고 뭐랄까.. 무엇보다도 내 삶이 점점 풍요로워지고 생기가 생긴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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