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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과학자, 공학자들이 모르는 정치가들의 뒷이야기

사실 사람들간의 믿음이라던가, 신뢰라는 것 수치화하기도 어렵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통계적으로 정량적으로 데이터화하고 분석해놔도 그것을 뛰어넘어서는 게 정치력이고 협상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수치로나 사람들의 평판이 A라는 사람 혹은 a기업이 좋고 뛰어나도 권력을 가진 C라는 정치인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B라는 사람 혹은 b기업이 있다면 그 사람을 채용하고 그 기업이   정부와 협약을 맺고 사업을 따낸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로 진학했지만, 선생님들이 말하는 논리와 근거가 학문적으로 맞기는 맞는데 뭔가 매번 놓치고 있다는 걸 다행이도 빠른시기에 느꼈다. 대학교에 와서도 그랬었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건 그 분들도 자신의 분야는 잘 알지만 자신이 모르는 분야는 보통사람들처럼 잘 모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전공수업보다는 내가 관심있어한 분야에 대한 교양수업이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를 혼자서 공부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물론, 내 전공도 내 적성과 흥미에 잘 맞아서 성적은 그런대로 잘 나왔다.   나는 보통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그래서 내 나름대로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내적으로 채워지는 만족감은 컸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방향성과 비전, 미션, 목적 등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또한 방향성을 잡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고 힘든 만큼 더 큰 의미와 동력이 생겼다.   인터넷에 보면 사람들이 문과니 이과니 하며 어떤 프레임을 스스로 씌우고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릇이나 컵의 모양이나 형태에 따라 담겨지는 음식이나 물의 형태와 담겨진 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나는 관점이나 프레임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거나 혹은 프레임 그 자체를 없애버리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많이 했었다

기회비용의 열역학 제 2법칙과 그것을 초월하는 것들에 대해서.

기회비용에서도 열역학 제 2법칙이 적용된다.   무슨 경제학의 원리를 과학적 법칙에 적용될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몸과 세상 만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열역학 제 2법칙과 같은 우리우주에서 적용되는 법칙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이 우주에서 떠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의 원리인 기회비용도 열역학 제 2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면 100이라는 것을 성취하고 싶으면 적어도 100을 초과하는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왜냐하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고립계가 아닌 이상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섬세한 부분을 잘 간과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무엇가를 이루기위해서는 희생이나 댓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Risk의 양이 Return의 양보다 무조건 많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끔, 아주 적은 희생이나 댓가를 치루고 엄청나게 큰 이득을 바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 인간의 욕망이라는 게 끝이 없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요행을 바란다면 단지 그 사람은 놀부와 같은 심보를 가진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에드워드 에릭은 “등가교환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주인공이 그렇게 등가교환을 외치는 이유는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라서 그렇다.   아무튼, 일반적인 등가교환이라는 의미는 사람들 간의 거래나 기업간의 거래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서로가 필요가 하는 물질이나 가치를 동등하게 교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거래가 성립이 되니까. 하지만, 인간들끼리의 거래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는 등가교환이 된다면 정말 꿈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 2법칙때문에 등가교환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체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엔트로피가 비가역적으로 증가하면서 여러 에너지들로 서로 변환되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최소한 무엇가

우리주의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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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나’라는 표현보다는 ‘우리’라는 표현은 더 많이 쓰이는 한국어의 특징이자 한국문화의 특징을 잘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주의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법보다 문화가 더 강하다. 법적으로 맺어진 사회계약보다 암암리에 통용되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암묵적 룰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나이나 서열에 따라서 생기는 수직적관계에서의 강제력은 굉장히 강하다.   반면,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유럽의 개인주의적이며 사회계약적인 문화를 기반해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유럽에서는 문화보다는 법이 더 강하다.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만 봐도 개인성이 얼마큼 존중되고 개인간의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안그래도 기존에 우리나라에 있는 우리주의라는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강한데 거기에 사회주의까지 합세하면 정말 투머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정치라는 것은 명분이 중요하다. 표면적인 명분과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숨겨둔 목적인 권력을 취하기 위한 것이 바로 정치이니까.   이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의 지나친 사회주의의 강조를 경계한다. 우리 혹은 사회라는 큰 조직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해야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문제들과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우리’라는 문화에 대한 반감과 저항심으로 자연스럽게 ‘자유’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자유라는 가치를 앞세워 정치를 하게되면 이념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내세워야하는 게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인권, 개인의 자율성과 책무성, 표현의 자유, 자유무역, 시장경제, 작은정부 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가 권력을 얻기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정치활동을 해야한다.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성공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기회와 평등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가장 기본적인 평등관이라고 할 수 있는 허용적 평등 혹은 허용적 공정은 기회의 평등으로 성, 인종, 종교 등의 차별없이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즉,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에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열심히 노력하고 내공을 쌓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회를 누군가가 공짜로 주는 걸까? 이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기회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 또한 어떠한 비용을 치루거나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워낙 여러가지로 어렵다보니 이 기회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안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문제가 있어서 안생기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안생기지 것인지 참 분별하기가 어렵다. 근데,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한다. 계속된 실패로 인해서 남탓, 사회탓으로 돌리면 결국 안좋아지는 것은 본인이다.   물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위해서 표현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 것도 본인의 노력과 투쟁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변화자체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내가 그동안 나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굉장히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고 활력이 넘친 일상을 보낸다. 그냥 그런 사람들을 보고만 있어도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고 동기부여가 된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위해 혹은 자신의 운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위치와 장소에 갈려고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만의 타이밍과 목표를 노린다.   즉,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

스티브 잡스로 알아보는 Return과 Risk

스티브 잡스는 20대 초반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하고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애플뿐만 아니라 3D 애니메이션의 회사인 Pixar와 현재 MacOS의 원조버전 OS를 만든 NexT라는 독보적이면서 창의적인 회사들을 창립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짤렸다가 다시 복귀하는 등 여러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Think different”, iMac, iPod, iPhone, Macbook air, iPad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에서 절대 빠뜨리면 안되는 훌륭한 아이디어와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는 56세라는 비교적 짧은 생을 살았다. 그는 췌장암이라는 암 중에서도 굉장히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 그가 췌장암을 걸린 여러가지 가설과 이야기가 존재한다. 나도 “왜 그가 왜 이렇게 빨리 죽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다.   나는 월터 아이작슨이 지은 “스티브 잡스”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다. 스티브 잡스는 휴일없이 매일매일 18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매일 18시간 이상 일을 해야한다고 했다. 세계를 이끄는 인류기업의 CEO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듯이 말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지은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얼마나 일 자체를 사랑했고 그의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매일 18시간 이상 미친듯이 일을 했기 때문에 췌장암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췌장은 인슐린을 만드는 기관이고 인슐린은 우리 몸의 에너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포도당이 세포라는 방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쇠이다. 매일 18시간 이상 일할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지속적이고 많은 양이 필요로 하고 그만큼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어내야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몸의 한계를 넘어 일을 했기때문에 췌장암에 걸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상도의 문화

나는 대전으로 대학교를 오면서 여러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이건 정말 웃긴데, 내가 고등학교를 김천으로 갔을 때에도 구미와 김천의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구미와 김천은 바로 옆에 있는 시인데 기기서도 미묘한 차이를 많이 느꼈다.   그러니 대학교를 충청도인 대전으로 왔으니 내가 느꼈던 문화적 차이는 말을 안해도 충분히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다.   가장 피부로 곧바로 느끼는 것은 사투리, 언어방식이다. 사용하는 화법이 달라서 크고 작은 오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느꼈던 전반적인 경상도와 충청도의 문화차이는 이랬다.   경상도에서는 친구끼리는 거리낌없이 대하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공유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떠올리면 쉽다.   다만, 처음에 친해지기가 쪼금 어렵긴하다. 친한 무리가 아니면 흔히, 텃세라고 불리우는 게 아무리 작은 조직에서도 나타나고 느낄 수 있으니까.   반면, 대학교에 왔더니 경상도에 비해서 텃세라고 부르기 민망한 정도로 그런 게 거의없다. 처음보는 사람이더라도 친절하게 대할려고 한다. 그래서 어느정도 선까지는 친해질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선을 넘거나 더 깊은 관계를 맺기는 쪼금 어려운 것 같다. 같은 동성끼리는 그나마 여러가지로 공유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낫지만, 이성끼리는 그 선을 넘어가기가 정말정말 힘든 것 같다.   특히, 내가 호감을 가지는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 혹은 “좋아한다”라고 표현을 하면 그 여성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경상도 문화의 도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호감의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게 있다. 그래서 충청도 문화를 가진 여성에게는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예고없이 날라오는 묵직한 직구랄까?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배운 것은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사소한 표현과 작은 친절들로서 아주 조금씩 다가가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아량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마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사람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때.   그런데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보니 불완전함에 대해서 그렇게 안달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해결할려고 해도 여러가지 한계들 때문에 즉각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되었으니까.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아무리 그 사람에게 잘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항상있기위해서 노력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다르다면 그 불안함과 관계는 변화하지 않을테니까.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도 그렇다. 예전에는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나 고민들이 있다면 완전히 없앨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완전히 없앨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스트레스나 고민들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가 했던 생각들과 대처들이 나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깨달았다.   단번에 무엇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놀부와 같은 심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였다.   이제는 스트레스나 어떤 불완전함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려고 한다. 시간이 차츰 흘러감에 따라 하나씩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정도 하고 나니,   예전에 책에서 본 천재들이 지닌 특성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천재들은 애매모호한 것에 대해서 잘 참는다고 한다. 기존의 가지고 있는 생각의 방식으로 분석되지 않더라도 보이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볼려고 한다고 한다.   평범한 나는 애매모호한 것을 절대 참지 못했다. 어떻게해서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관점을 통해서 분석할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새롭게 나타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다.   공부든 일이든 사람관계에 있어서 금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문제라는 말도 한마디로 딱 정리하기

주사를 맞기 전에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이유.

손으로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이유는 미리 고통을 주어 고통에 대한 역치값을 올려서 주사바늘이 엉덩이에 들어갈 때 고통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끼기 위해서이다.   가끔은 이게 손으로 두드리는 것인지 주사인지를 구분하지 못해서 어느샌가 끝난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삶에서도 엉덩이를 톡톡 두리는 것처럼 미리 작은 고통들을 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를 한다면 아무리 민감하고 생각이 다른 주제더라도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나면 실제 대화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별 일 아닌 것처럼 지나갈 수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이유는 사람간의 관계나 대화 등이 아니더라도 나의 불안한 미래와 같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 미리 염려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것들에 대한 생각과 대비를 엄청했는데 정작 그 일을 겪으니까 사실 별 게 없었다.   물론, 진짜 그게 알고보면 쉬운 일인데 내가 미리 여러가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기에 쉽게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예전보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여유도 생긴 것 같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람들과의 관계이든 이 방법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사이에서이다.   나는 엄마와 누나가 대화하는 걸 많이 들어봤다. 또 엄마나 누나와 많이 대화를 해서 그런지 남자들이 여자들 마음이나 심정을 참 모른다 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중에 여자친구와 또, 결혼해서 아내와 많은 대화를 할 것이다.   이는 둘만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실제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정말 별거 아닌 일처럼.   아내에게는 특히 ‘아내에게 교육을 받는다’라는 생각으로 여러가지 주제에

자유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나의 정치적 기본적인 성향은 자유주의이다.   개인과 집단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정말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해도 세상에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이 때는 먼저 공화주의적으로 풀어보어야 한다.   공화주의 각자의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간의 생각과 감정, 이익 등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하며 그것들을 합의하는 과정이라할 수 있다. 공화주의에서도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권리와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공화주의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모아야하거나 사회안전망을 갖추거나 전쟁과 같은 엄청난 사업을 준비할 때에는 사회주의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반발하는 개인들이 많아서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군 징병제 등을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제공한다거나 그들에 관한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보면 지나치게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펴는 게 많다.   역차별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지 말라던가, 어떤 특정한 사회운동이나 생각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던가, 혹은 개인의 정보통신망을 개인의 허락없이 정부가 어떤 특정한 이유만으로 제한한다건가.   어떤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그 영역을 아예 기능하지 못하게하는 정책이나 지시가 너무나 많아진 것 같다.   나는 이러한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 드라마 ‘House of Card’에서 프랜시스가 했던 방식과 언행이 떠올랐다.  

집중과 배분 그리고 비율에 대해서.

어떤 활동을 하기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어떻게 집중하고 배분하느냐에 따라서 동·식물에게 엄청난 차이와 변화을 불러일으킨다.   고대부터 철학자나 수학자, 미술가들은 황금비를 찾을려고 하는 이유도 그렇다. 어떤 물질이 가장 완벽하게 존재하기위한 비율을 찾기위해서.   이러한 것을 확장하면 미분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게되면   점점 물기둥의 단위면적이 줄어드는 이유도 가장 완벽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력가속도에 의해 물입자 속력이 빨라지는 만큼 단위면적도 그 비율 만큼 작아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학적 표현방식와 물리적 원리를 정리하면서 기술 및 공학이 나오게 되고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우주의 물리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을 잘 알고 있으면 관념적인 세계에서의 논리와 원리들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숫자로 환원한다던지 원자단위로 환원해서 생각하게 되면 고려하지 않은 쿼크와 같은 미립자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변수들을 놓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편협한 관점과 논리로 사람들을 자신이 통제하고 길들이려고 하는 압제자들을 나는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황금비와 같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보고 자신에게 알맞게 선택과 집중을 하며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균형있고 멋진 관점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혹은 복제인간 혹은 레플리컨트 등의 존재들에 대해서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그들에게도 법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기술만능주의에 빠진사람은 사람에 대한 문제나 법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이나 기계들에게 맡기면 손쉽게 해결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손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계 혹은 인공지능 혹은 복제인간 혹은 레프리컨트 등으로 불리우는 존재들에게 참정권이나 표현의 자유 등 여러 권리와 의무 등을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법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법적인 과정에 참여까지 생각하는 것은 무엇가를 굉장히 손쉽게 취할려고하는 그런 마음 때문이다. 동시에 어떤 책임에서 벗어나기위해서이다. 죄책감이라던지, 의무감이라던지.   비록 내면이 있는지 없는지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이 현실세계와 인간세계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면 그것은 내면이나 마음의 유무를 떠나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기서 나아가 인간보다 나은 능력과 판단능력 심지어 개성과 문제해결력, 창의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이 존재들을 무시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이고 무지이다.   머릿속에서 이런 대사가 스쳐지나간다.   “제 안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지만, 마음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어요.”  

소개팅앱의 근황을 통해 알 수 있는 과학·기술의 한계

중·고등학교 때 내가 만났던 몇몇 수학선생님들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숫자로 생각하고 보았다.   나는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시간에 흘러서는 그분들을 생각하니까 참 지나치게 편향적인 생각들을 학생들에게 압제적으로 주입할려고 했구나라는 걸 느꼈다.   굳이 수학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이공계 쪽에 진로를 정하다보면 숫자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분석하고 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나도 사실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 될려고 엄청 노력했던 사람이였으니까.   그런데, 숫자로 세상을 보는 관점은 수학, 과학, 기술, 공학 등의 영역에서 통하는 관점이지 사람관계와 같은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들이나 사랑이나 신뢰 등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공계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Problem solve”라는 관점으로 알고 있는 지식과 자원을 투입해 무엇이든지 해결할려고 하는 습관이 생긴다. 이게 사실 좋은 태도이긴하다. 그러나, 무식한데 신념이 강하면 여러사람들에게 피해주는 것처럼 자신의 관점이나 신념만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 채 다른사람들에게 강요하면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되기 시작한다.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면 프로그래밍 천재 마크 주커버그가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와 필요 등을 해결하기위해서 만든 것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처럼 세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나타나는 것은 이공계에서 말하는 “Problem solve”라는 관점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오랜시간동안 사용해본 사람들은 이 앱의 한계들에 대해서 점차 깨닫는다. 손쉽게 그리고 편하게 사람들과 연락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어도 사람 간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또렷하게 볼 수 없다.   이 글의 제목인 소개팅앱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관계는 단지 듣기

착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나쁜 것 또한 잘 안다.

방송인이자 가수인 김종민 씨가 예전에 개그맨 유상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나쁜 행동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무엇이 착한 것이고 나쁜 행동인지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행동한다. 나도 그렇지만 (장)동민이를 볼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어떤 동질감을 느껴.   나는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 말 곧 진리이고 무조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이 무조건 받아드리고 그들에게 요구를 잘 순응하는 사람이였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나 어른들 혹은 선생님이더라도 잘 모르거나 실수하고 틀린 생각이나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것을 깨닫을 때도 나만의 선이나 정의 등을 항상 염두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살아왔다. 왜냐하면 내가 후회하지 않기위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 속에 사실 굉장히 많은 말과 의미가 내포한다.   나는 나의 행동에 책임을 가지기 때문에, 나로인해서 누군가가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은 힘이 들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등등.   이렇게 나는 나만의 기준을 확고히 가지며 살아왔다.   그 중 이 나만의 기준을 지키며 살아왔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편하기 위해서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후회나 책임 혹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흔히 바보같지만 혹은 호구같지만 착한 행동을 해왔다.   그러나 배신이나 무시 등 여러 경험등을 통해 이게 능사라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착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가 화가 나는 모습이 상상이 안간다.   본래 이기적이거나 나쁜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본래 착하고 곧은 사람이 변했을 때 모습이라는 것이라는 나는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