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9의 게시물 표시

“송구하오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이 보이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  ●  ● 심리학에서 ‘투사’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사나 생각 따위 등은 전혀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그 사람에게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로서, 대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행동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나 심리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사는 아무리 보아도 꼭 돼지처럼 생겼구려.”   이성계의 말에 무학대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습니까. 소승이 보기에 대왕께서는 부처님처럼 생기신 듯합니다만.”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다시 말했다.   “아니, 농담을 하자는데 그렇게 칭찬의 말을 하면 어떡하오.”   하고 타박을 하니 무학대사가 그 말을 다시 받았다.   “송구하오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이 보이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무학대사가 한 말은 지금까지도 정말 자주 쓰이는 클리셰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고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것처럼.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쉽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평상 시에 지닌 생각이나 태도, 마음가짐 등이 모두 그 사람이 하는 말로써 혹은 행동으로써 나타난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혼돈이기에 두 개의 폭탄 스위치가 반드시 눌러질 거라고 생각했고, 브루스 웨인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누구에게나 선한 부분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와 타인에 대한 믿음은 고스란히 자신의 품격으로 이어진다고 나

경제학자들은 왜 워렌 버핏처럼 되지 못할까?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직업과 업은 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변수들이나 상호작용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투자자 혹은 실력있는 투자자가 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워렌 버핏은 투자를 할 때, 거시경제학적인 관점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집중있게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변하지 않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야구에서의 좋은 타자를 비유하면서 투자를 얘기했다. 4할이 넘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올 때 스윙을 하는 게 공을 맞힐 확률이 높지, 자기가 좋아보이는 공이지만 2할 정도 확률을 가지는 공에 스윙하면 딱 2할정도의 확률로 그 공을 칠 수 있다.   이 것은 투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시험에서는 무조건 처음보는 문제를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보고 어려운 문제를 맞출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해당 과목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이자 문제들을 공부하는 게 현명하고 시험을 탁월하게 준비하는 방법이다.   투자의 원리를 시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원리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공부하는 게 효과적인 학습방법이지, 자신이 보기에 비전이 있고 미래가 있어보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이론들을 공부하는 것은 보통 학습자들이 하는 것은 좋은 학습방법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을 학자들과 같이 전문가들에게 맡겨두는 게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와 투자가가 다른 것처럼 과학자와 엔지니어도 다르다.   과학자는 이론을 엔지니어 혹은 기술자들은 실제 자신에게 주어진 현상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중점이다.   감독과 선수가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을 하는 것처럼 각자 하는 영역이 다르다.

그 사람은 그냥 관심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양하고 수많은 여러가지 변수들까지 생각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그렇게 복잡한 걸 생각하기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은 자신에게 충실하고 지금에 충실할 뿐이지. 굳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지나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아래에 링크를 걸어둔 영상에서는 브리 라슨에 대해 비판한다. 영상을 만든 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브리 라슨에게도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타인이 세심하고 고려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고해서 그 사람은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에 충실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온 영화를 보니까 충분히 오스카상을 받을 만한 이유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나온 영화를 보고난 후, 내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프레임이나 네거티브의 물살에 너무나 쉽게 영향을 받았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타인을 바라볼 때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생각없이 발언하고 무책임하게 타인에게 어떤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람이 되니까.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고해서 계속 가르칠려고 드는 것은 본인이 그렇게 외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중, 평등성, 포용성 등의 가치들을 내팽겨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스스로가 모순적인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주게 되는 꼴이 된다. 또한 어떤 타인에게 지나친 낙인을 찍거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네거티브와 같은 정치적인 언행은 반드시 그에 따른 반작용이 나타

이미 우리는 빅브라더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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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개설한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에 대한 데이터들이다.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고로, 나는 이 정보들을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본다. 최소 구글 이상되는 기술력과 자본력을 가진 조직이라면, 어떤 개인의 여러 정보들을 보는 것은 정말 손쉬운 일이거라고 생각이 든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본인이 해먹으면 깨닫는 것들 중에 하나.

●  ●  ● 음식을 많이 먹겠다고 많이 해놓으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배탈이나고 또한 버려야하는 관계들이 더 많을 때가 있다.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지금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사람관계든, 공부든, 일이든 요리든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  ●  ●

수학이나 과학의 지식이나 방법을 사용해도 실제로 적용해보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되어야하는데 혹은 실험실에서는 잘 되었는데 막상 실제 사람들이 사용을 하거나 시장에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출시하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좁은 관점과 시야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효율적으로만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숫자로 혹은 과학적 현상이나 원리로는 현실에서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들을 다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고 적어도 그 문제의 원인들이나 어떤 균열들을 최대한으로 가깝게 끼워맞추고 채우기위해서 공학이나 경영학 등이 필요했고 그것들이 점차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론적 지식과 원리 등을 하나로 통합된 어떤 프로토타입이나 모델을 만들어 시장이나 어떤 상황에서 유의미있게 잘 적용되고 해결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한다. 이러한 것들을 하는 게 공학이고 경영학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하고 보완한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자 산출물이 흔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기술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의 기술, 강의하는 기술 등과 같은 것도 기술이고 어느 글로벌 기업이 만든 새로운 서비스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공계로 진로를 정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이러한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무조건 숫자로만 혹은 자신이 배운 이론들로만 세상을 분석하고 해결할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면 휠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그들은 왜 그렇게 고집만 부리는지 참 답답할 때가 있다.   아무튼, 생각의 프레임이나 틀은 생각을 유연하게 하기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것들로 인해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된 접근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산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고, 의미있는 모든 것들이 계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내가 무신론자에서 범신론자로 된 이유.

가장 큰 계기는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들이 폭포와 그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돌면서 어떤 의식에 대해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문뜩 내 안에서 어떤 생각이 맴돌았다. 살아있는 식물이든 어떤 동물이든 혹은 무생물인 흙이나 바위, 폭포에도 어떤 영혼이 있다는 것을.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우연히 SNS에서 본 글이였다.   집을 자주 가출하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 고양이의 주인이 가끔씩 집 창가로 놀러오는 길고양이들 중에서 덩치가 크고 누가봐도 두목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와 같이 다니는 조금 작은 고양이에게 “두목님, 우리집 고양이한테 얼른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주세요.”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고양이들에게 혼잣말을 할 때마다 항상 집에 나갔던 고양이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 주인은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도 많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 때마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관점에 갇혀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아침밥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이다.   그러니까 쌀신, 달걀신, 김치신, 김신, 멸치신 등등이 나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어서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힘들때마다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이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항상 나를 걱정해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이 나에게 있어서 신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이 공간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이다.   나는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모르는 신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않아도 이미 내 곁에, 우리 곁에는 신들이 항상 존재한다.   길

나는 농부라는 말이 좋다.

누구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하루를 누구보다 알차게 보낸다. 사계절을 또렷하게 느끼는 사람이며 자연의 섭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허래허식 따위보다는 풍요로운 것이 무엇인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또한 농부는 어느 사람과 비교해도 힘에서 뒤지지 않는다. 가족들에게는 든든한 존재이며 버팀목이다.   그러나, 도시사람들은 농부에 대해서 1도 모른다.  

“교수님, 가장 최근에 읽으신 소설책은 무엇인가요?”

●  ●  ● “아 그런가요? 그럼, 제 이야기를 교수님에게는 하기가 어렵겠네요.”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어떤 말이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없지만, 내 이야기를 아주 편안하고 쉽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   이러한 걸 언어로 정말정말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가장 적당한 말로 표현하자면 이 글의 제목처럼   “최근에 어떤 소설책을 읽으셨나요?” 라는 물음에 대한 그 사람의 반응을 보면 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렇다.   ●  ●  ●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게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및 수능수험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을 보면 가끔 지나치게 몰입하는 게 오히려 원하고자 하는 목표달성에 안좋다는 걸 많이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꽤 오랫동안 해봤으니까 충분히 안다. 성적향상을 위해 혹은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것들이 점차 누적되면서 오히려 공부하는 데 더더욱 어려움이 생긴다는 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경험해보았으니까. 내 나름대로 허우적허우적거려 보았으니까.   건강이 점차 안좋아지고,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 풀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영향들이 수면에도 악영향을 주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진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사고체계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지독한 굴레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었다. 또한 인터넷을 봐도 그렇고 주변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이 굴레를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의 근무환경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휴식공간이 일하는 공간이보다 더 많고, 구글의 직원들도 그 공간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걸 보았을 때에는 좋은 직장에 가면 저런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뜩, 내 생각이 조금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균형을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공부나 일이나 높은 성취도를 얻어낸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정말 창의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단지 무조건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건강하고 똑똑하게 의자에 앉아있는다.   그러니까 그들이 엉덩이가 무거운 이유도 건강한 식습관, 생활패턴, 일상 등을 보내니까 그런 것이였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내가 최

에릭 킬몽거가 매력적인 이유 (feat. 라이온 킹)

영화 <블랙팬서>에 나오는 ‘에릭 킬몽거’라는 인물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어떻게 보면 <라이온 킹>의 오묘한 뒤섞임으로 구성한 게 <블랙팬서>라 볼 수 있다. 즉, ‘에릭 킬몽거’는 <라이온 킹>의 ‘심바’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영화에서의 잡혀지는 카메라 구도가 다르다. 라이온 킹인 ‘심바’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에릭 킬몽거’는 빌런으로 나온다. 심바는 주변 친구들의 조력이 있었지만, 에릭 킬몽거는 오로지 혼자서 그 모든 걸 해낸다. 그러니까 에릭 킬몽거는 대단한 능력자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에릭 킬몽거의 행보를 보면 굉장히 폭력적이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절대 절차적 정당성의 테두리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 굉장히 엄격하게 절차적인 정당성을 잘 지키며 자신의 신념과 목적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 박물관에 있는 와칸다의 유물도 영국인들이 원래 와칸다에서 훔쳐갔기 때문에 와칸다 사람인 에릭 킬몽거가 과거 영국인들이 했던 것처럼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해서 그대로 가져간다. 또한, 그의 내면에 있은 복수심과 폭력성을 특수요원이라는 업을 삼아 국가에서 내려주는 임무와 명령이라는 명쾌하고 논리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죽이고 그의 힘을 스스로 기르며 그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내가 보기에 가장 인상적이였던 부분은 왕이 되기 위한 절차와 과정도 ‘에릭 킬몽거’는 와칸다의 법과 정당성을 굉장히 잘 지키고 있다. 오히려, <블랙팬서>의 주인공인 ‘트찰라’가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재기하는 편법을 이용해 그와 다시 대결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을 잘 준수하며 자신의 정의와 목적을 실현하는 ‘에릭 킬몽거’가 보여주는 메시지를 잘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항이론을 주장한 윌리스는 ‘간파’와 ‘한계’라는 용어로 하위계층의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한다. 사회의 주류계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날 판단하려하지마

“날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과 같이 판단하지마.”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드리고 느껴주는 사람이 좋다.

오늘 악몽을 꾸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엘리베이터가 계속올라가는..

권혁수 닮은 사람이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방에 올라가기위해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6, 17, 18, 19.... 계속 엘레베이터가 올라갔다. 거의 60층 가까이 내가 들어온 건물은 그렇게 큰 건물이 아닌데 이렇게 올라가는 건 말이 안되는 현상이다. 그것도 그냥올라가는게 아니리 점점 가속되면서 올라갔다. 그러더니 엘리베이터 통째로 건물밖으로 튕겨져나왔다. 도로 속으로 질주를 했다. 엄청난 속력과 함께 길에 걷는 사람들이 중 무고한 사람이 죽은 것 같았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에 치여서 결국엔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왔다갔다하다가 난 내 혀를 깨물고 말았다. 경찰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 할려고 했는데 잘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수상한 점은 경찰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은 혀를 갖고. 그런데 같이 탔었던 권혁수를 닮은 사람이 나를 저지하려고 했고 내가 갖고 있던 아이폰을 빼앗으려고 하고 내 말을 막으려했다. 그 순간 느꼈다. 이 사람이 나를 죽이려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까지. 그것도 무고하게 단지, 알 수 없는 증오심으로 죽이려하는 느낌이였다.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도 몸에 베어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다른사람을 헤치고, 피해를 주고 심지어 죽일려고 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살아남고 잘 되기 위해서. 난 이렇게,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어떠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이 작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그들의 의도나 마음가짐을 대충 느낄 수 있다. 오늘 꾼 이 꿈을, 이 메타포를 잘 간직하고 있자. 당분간은 - 2017년 3월 15일 나의 일기장에서 

잊고 있었던 느낌.

영풍문고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 횡당보도를 건너기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에 있는 초록색 치마와 난방을 허리에 묶는 소녀가 딱 눈에 띄었다. 누가봐도 새내기이거나 새롭게 단장을 한 20대 소녀였다. 굉장히 밝고 건강하고 활기찬 느낌을 저렇게 옷으로도 표현하고 그걸 본 내가 느낄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였다. 누구나 색채라는 게 있다. 그 색채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아무런 목적없이 일단 밖에 나가자라고 해서 한바퀴 걸어왔는데 그 새 나도 모르게 내 색채가 조금씩 바뀌었고 지금은 이런 색채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걸 느낀다. 젊었들 때 예쁘게 꾸미고 다니라고 어른들이 말한다. 나중에는 그것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말을 오늘 그 초록색 치마의 소녀를 보며 느꼈다.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지만, 그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낄까봐 멀리서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았을 뿐 그 이상하기에는 망설여졌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소녀도 나를 본 느낌이였다. 나를 멀리서 보고 조금 느리게 걷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 착각일뿐 실제로 그러한 것은 그 소녀만 안다. 나도 그 시기마다 뭔가 멋있게 보일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흑역사이고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행착오를 했지만 그때 그렇게 한 것이 후회는 절대 없다. 그 때 그렇게 했기에 배울 수 있었고 재미있는 기억도 있고 조금씩 다듬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혹은 누군가에게는 오늘본 초록색 치마를 입는 그 소녀처럼 멋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영풍문고에 들어가서는 문구쪽부터 천천히 보았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여러가지 문구와 물품과 그림들, 그 속에서 그것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러사람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보내는지,

유튜브 채널아트에 링크 설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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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갑분싸메이커 입니다.  오늘은 유튜브 채널아트 에 하이퍼 링크 를 설정 하는 방법을 알아볼 거에요.  가끔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보면 상단 배경 한구석 쯤에 SNS 아이콘 이 예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가 여러번 있을 거예요.  마우스를 아이콘에 두면 링크가 걸려져 있는 걸 한번 쯤 경험해보지 않았나요??🤔  이 방법은 한 번만 설정해 놓으면 홍보 효과 를 톡톡히 볼 수 있어요!😆 먼저 유튜브에 접속해서 로그인을 하면 오른쪽 위에 프로필 사진 아이콘을 누르세요.  그럼, 위에 보이시는 것처럼 '내 채널' 을 클릭해 줍니다.  그럼 오른쪽에 '채널 맞춤설정' 이라는 아이콘이 나와요. 이걸 클릭해주면... 이렇게 동영상 관리자 페이지 로 들어가게됩니다.  여기서 '정보' 탭을 누르시면...  링크를 편집할 수 있는 펜 아이콘이 보일거에요. 그럼 바로 이 펜 아이콘을 누르세요!  아까 보았던 유튜브 채널의 상단 배경이 바로  '채널아트' 라고 불러요.  채널아트 안에 맞춤 링크를 설정해 놓으면 해당 웹사이트의 파비콘 과 하이퍼링크 가 채널아트에 삽입이 됩니다. 저는 이 블로그 서비스인 Blogger와 Facebook 그리고 Instagram의 설정해두었어요.  제가 한 것처럼 링크 제목 에 쓰고 싶으신 웹사이트 명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 이름을 쓰시고 URL 주소 마저 넣어주시고 하단에 있는 완료버튼을 누르시면! 🙌요렇게~ 채널아트에 파비콘과 해당 사이트로 가는 하이퍼링크가 설정이 되었습니다! 😆 참 쉽죠잉~🥴...🤭 이상 유튜브 채널아트에 링크를 설정하는 방법을 마치겠습니다.🙋🏻‍♂️ 참고자료 Youtube 고객센터 - 채널 아트 만들기 또는 수정  

유일하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들, 딸이기에 사랑스럽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애인이기에 사랑스럽다.   예전에 미국의 어느 농구스타는 무수히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한번에 동시에는 물론, 한꺼번에도 했을 정도로 그는 말그대로 카사노바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단 한 명의 여자만을 사랑하겠어요.” 나는 그의 짧은 말 속에서 많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고 몸매가 좋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의 선에서만 그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풀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이 상상하거나 스스로 만들어낸 어떤 대상과 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사랑이라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진실되게 마주하며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마침내 그 사람과의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와 하는 게 아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명대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게 왜 이렇게 거슬릴까? 뭔가 빠져있다.   나는 예전부터 어른들이 했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믿는 굉장히 순종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어른들 말씀따라 그대로 생각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 나..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른들 말마따나 열심히 해보고 노력도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나에게 안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특별히 나에게 무슨 의미나 유의미한 외재적인 보상이 오는 것도 아니였다. 단지, 남들이 하니까 하는 거였다.  나는 그 순간부터 점차 이상함을 느꼈다. 어른들도 어찌할 도리도 없고 사실 보여주고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밖에 혹은 이 말 밖에 해줄 수 없고, 할 수 없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설에서 점점 진실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고나서부터 나만의 무엇가를 찾기위해 정말 애썼다. 이건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알려주지도 못한다. 직접 부딪치고 내가 직접 느껴봐야 깨닫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무런 자신만의 목적이나 의미없이 고통을 감내하고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파멸에 이끌게 한다”라는 걸.  어른들은 어릴 때,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공포’나 ‘불안감’을 이용한다. “지금 이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준다”, “지금 공부 안하면 나중에 커서 ~~된다.”,  “남들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갈려면 남들이 잘 때에도 너는 열심히 공부해야 앞설 수 있다” 등등 이런 말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주어 어른들의 말을 잘 듣도록 겁을 준다.  미안하게도 아이들에게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부모님이지, 알 수 없는 먼나라에서 루돌프와 썰매를 타고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나 ‘불안감’은 어른들에게도 잘 통

내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내가 원래 내성적인 성향이라서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그런지, 경상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생각이나 표현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 죽겠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헌법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자유’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진정한 자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자유는 그냥 ‘지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유는 본래 자신이 선택한 행위나 활동 등에 대해서 자신이 최대한의 책임을 지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자유는 책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다시 말해,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활동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자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렇기에 자유라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것이며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본질을 망각한 채 망나니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정말 잘 못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유를 스스로가 제대로 행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 진실된 마음과 사실에 입각한 주장이라면 최대한 마음껏 표현하고 함께 나누고 토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부터 자유롭고 책임감있게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저 사람 멋지다”라는 생각과 감정을 항상 느꼈다. 

내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것에 대해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

첫번째, 국가주의니 우리주의니 하는 그런 이데올로기들에 이제 국민들이 더 이상 속아넘어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모든 국민들이 다 알고있는데, 흔히 높으신 분들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두번째,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인구과잉에 따른 환경파괴 및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생긴다. 그래서 인구를 축소해야만 한다’ 따위의 논리나 주장따위들을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음모론들이 영화나 소설속에서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나 이론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번째, 국민들 대다수가 자신이 짊어져야하는 책임이나 고통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고통이나 책임을 갖고 의미를 만들어 갈 줄 아는 그런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오해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겠다. 아이를 낳아서 생기는 삶의 풍요로움과 의미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현실상황을 철저하게 고려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 감당하는 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출산율이 낮아도 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수많은 문제점들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등의 인문학의 분야에서도 지금까지 쌓인 타당하고 신뢰로운 해결방법들과 대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해결할 문제들이 많지만 나는 그 문제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보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항상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해왔기 때문이다. 

썸남 혹은 썸녀가 나를 진짜 좋아해서 만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외로움을 나를 통해 달래기 위해 만나는 건지 구분하는 방법.

이게 참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 사람에게 진짜 호감이 있고 마음이 있는데 상대방은 단지 자신의 외로움만 달래기위해서 나를 만나는 거면 정말 갑분싸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지나치게 빠른 기간 내에 스킨십을 하거나 스킨십을 원하는 신호를 보내면 한번 의심해 볼 만하다. 원래부터 그 사람이 다른사람들에게 스킨십이 많거나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감안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과 여러번 만나보면서 그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나 평상 시 모습은 그렇지 않는데 나에게만 이렇게 한다? 그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솔직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피할려고 한다. 나에게 진짜로 호감이고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나 비전 혹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들을 충분히 잘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깊은 내면이나 생각들을 피할려고하면 한 번 의심할만하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알아볼려는 생각을 가지는 건 좋은 생각도 아니고, 좋은 태도도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진짜 궁금하다면 자신 얘기를 먼저 솔직하게 꺼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지거나 리스크 혹은 손해보는 걸 지나치게 싫어한다. 어느 사람관계에서든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을 얻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서 배려있는 책임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사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도 다른 선택지들을 포기할만큼 의미있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기회비용들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가치가 어떠한 사람들보다 가치롭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해를 보기 싫어하고 책임감을 짊어지기 싫어한다면 연애를 하면 안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더라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관계라는 게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나는 이러

각 검색엔진 사이트별 나의 활용방법

구글  나의 기본 검색엔진이다. 한국어로 검색하면 네이버나 다음에서 나오는 검색결과가 꽤 다르다. 처음에는 구글의 검색결과가 낯설어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차 학습하고 지식과 정보들이 누적됨에 따라 타당성이 있고 신뢰로운 정보들이 다른 사이트에 비해 찾을 확률이 높은 걸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영어로 검색하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최고의 검색결과를 보여준다.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다른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영어로 검색해도 찾지 못하는 좋은 내용들도 잘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구글의 검색엔진을 기본검색엔진으로 설정한 이유는 가장 직관적인 검색엔진이라서 그렇다.  네이버  예전에는 지식인, 블로그글 위주로 들어가 내용들을 봤지만, 지금은 네이버 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능들이나 서비스를 자주 활용한다. 예를 들면, TV프로그램 방영된 회차나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맛집이나 명소 검색, 의약품 검색, 지식백과, 네이버사전, modoo!, 네이버지도, 유튜브에서 볼 수 없는 지상파 프로그램 짧막한 영상들을 볼 수 있는 NAVER TV 등과 같은 서비스들을 자주 사용한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네이버가 구글보다 낫다.  구글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직접 제공하기보다는 좋은 양질의 콘텐츠를 소유한 웹사이트를 찾아주는 게 구글의 검색엔진의 특징이라서 네이버처럼 디테일하고 일상적인 정보를 찾기에는 다소 불편함이 있다. 다음  다음은 카카오에 합병되고 나서 접근하는 많이 경로가 달라졌다. 사파리나 크롬과 같은 웹브라우저가 아닌 카카오톡 앱에서 다음 포털사이트나 다음에서 제공하는 검색엔진을 이용한다. 그래서 주로 활용하는 것도 카카오톡 앱 내에서 활용한다. 샾검색을 통한 채팅방에 있는 사람들과의 여러 정보공유, ‘#’탭에 있는 뉴스나 여러 정보들을 본다. 검색기능 중에 다른 회사에 없거나 가장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꽃검색

무너진 교사의 교권을 존중받는 방법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사인지감수성’을 키울 수 있게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관련된 사례나 내용들을 노출하고 교육하면 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교사의 인권과 권리 그리고 권한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교사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은 행동을 한다? 그럼 그 교사가 ‘학생인지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게 학생들은 해당교사에게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고 헌법, 법률, 교칙에 따라 항의하고 시위를 하면된다. 

당신이 스티브 잡스보다 뛰어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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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의 메타인지 능력이 스티브잡스보다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티브잡스보다 자료를 잘 정리하고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들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스티브 잡스만큼 탁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에, 스티브 잡스의 메모법, 스티브 잡스의 스케줄 관리법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면 우리나라에서 분명히 베스트셀러가 되었을텐데 왜 지금까지도 이런 책을 본 적이 없을까?   그런데 나중에 ‘스티브잡스의 메모법’과 같은 책이 나와도 나는 보지 않을 것 같다. 이미 그 답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메모나 기록 등에 관한 것을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했다.   위 사진 을 보면 알 수 있다. 컴퓨터는 그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것은 종이책들뿐이였다. (내가 볼 때에는 붓과 벼루도 보이는 것 같다.) 그는 미니멀리즘을 유행시킨 장본인으로서 딱 정좌자세로 그의 방에서 무엇가를 하고 있다.      이 위에 있는 사진들은  아타리에서 일할 때 스티브 잡스가 남긴 메모들이다. 이 링크 는 스티브 잡스 그리고 그의 아이맥과 책장들을 볼 수 있는 링크이다.   각 링크들에 들어가서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한 눈에 보기에는 엄청나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던 키워드인 ‘집중과 선택’이 떠오른다.   얼핏 보기에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체계적이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매체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거나 프레젠티이션을 하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보다 명확하고 또렷하게 전달한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똑부러게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살면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인상적이고 나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열 손가락이 넘지 않는데, 그

수필 형태로 블로그를 쓰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저작권 때문이다.   나의 언어로, 나의 표현법으로 내 생각들이 바탕이 되고 타인의 주장이나 지식 등을 인용하고 참고 및 참조하며 살을 붙이는 게 일반적인 저작활동의 기본이니까.   또한, 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온전한 '나'의 관점에서 쓰는 게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것 자체가 바로 나의 개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일기에 쓴 글들을 바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에드센스를 승인받기위해서 어느정도의 게시글이 필요해서 최대한 빠른시간 내에 승인을 받기위해서는 내 일기장에 있는 내용들을 블로그에 알맞게 변형해서 게시하는 것이였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느낀 것은 그 동안 꾸준히 써왔던 일기가 굉장히 나에게 큰 자산이라는 걸 느꼈다. 만약,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았다면 이 블로그도 지금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형편없는 글솜씨이지만, 예전의 글솜씨 비해서는 개선되고 성장되었기에 예전보다 조금 더 용기를 갖고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