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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ape.에 대하여.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bad ape라고 하는 새로운 유인원이 나온다. 이 유인원은 자신을 시저의 무리와 달리 동물원에서 탈출한 유인원이라고 소개한다. ape virus에 영향을 받아서 인간들이 하는 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bad ape가 시저의 무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다. 인간들이 나에게 (손가락을 바깥으로 향하게 행동하며) ‘bad ape’ (손을 돌려 자신을 가르키며) ‘bad ape’ 이 장면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불러주는 명칭이다. bad ape도 인간들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bad ape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어리숙하지만 이타적이고 굉장히 착한 캐릭터이다. 유인원에게 있어서는 bad ape가 아니라 good ape가 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bad ape가 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역설적인 이름이다.  인간에게는 bad ape가 되지만, 유인원에게는 good ape가 된다. 이 영화와 같이 인간과 유인원이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집단끼리는 어찌할 수 없는 관점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bad ape라는 캐릭터를 보자마자 나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본 캐릭터중에서 가장 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때에 수박을 떨어뜨려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내 지갑을 떨어뜨려 옆에 있는 사람을 당황할 만큼 굉장히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능숙한 모습이 없지만,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다.’라는 게 내 진짜 마음이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사람들이 나에게 “착한 것 같다.” “선한 사람인 것 같다 .” “순수하다.”

태어나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연애를 처음할 때에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그 사람에게 맞춘다. 처음이기 때문에 혹시나 실수할까봐 걱정도 하고, 의도치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다칠까봐 불안해한다. 연애를 처음할 때 경험하는 것들은 사람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겠지만,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가끔은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뭘 하더라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랫동안 성공하거나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할 때에는 그렇다. 생애 첫 연애라는 경험은 사람이 평생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자극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정말 강력한 감정과 자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들을 잃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연애처럼 큰 자극 받거나 자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왔을 때에도 이상하게 평소처럼 행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들 알겠지만 안간힘을 쓸수록 더 안된다. 연애나 사람 관계 혹은 사랑은 의식적인 노력 혹은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충분히 참고 기다릴 수 있고, 기분 좋은 배려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어떨 때에는 말이나 어떤 행동보다는 기다림과 침묵이 더 효과적인 소통방법이 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혹은 생애 처음으로 좋은 기회가 왔거나 한번의 성공이나 성취로 안정적인 궤도로 다가섰을 때에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보다는 적당히 힘을 빼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하나씩 해내면 된다.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고,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더라도 의식적으로 의연하게 하는 척 굴어야 한다. 불안함과 조급함에 휩싸이면, 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까.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아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연금술사>중 한 장면이다.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군을 거역하지 마라. 금을 만들지마라. 사람을 만들지 마라.   였나요?” “그렇다. 군을 거역하지 말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겠지.”   “금을 만들지 말라는 건 경제적 혼란을 피하고자. 그럼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어째서 국가가 사람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겠나?”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겠죠. 연금술사들 사이에서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암묵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네. 윤리 나부랭이는 시대나 개인에 따라 변하는 법이야.   이유는 그런 게 아닐세. 개인이 강력한 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소장.” 이 하나의 장면이 정말 많은 것을 내포한다. 정말 훌륭한 작가, 만화가라는 것은 한 대목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면서 어떻게 군대에 직접 가지 않는 사람이 군대에 대해 잘 알고 인간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아는지 참으로 대단한다는 걸 느낀다. [1] 권력을 가진 사람에 따라 인간세상은 돌아간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취업난이나 경제, 과학이라는 현실과 거대담론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지배한다. 힘이 없는 개인은 이 거대체제에 대항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릴 때부터 정치효용감이라고는 전혀 느껴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만연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개인이 막대한 힘과 권력을 갖도록 하지 않기 위해 기득권 세력들은 수많은 장치와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길들여지고 어느샌가 초심을 잊어버린다. 그 순간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밖에 될 수 없다. 그들의 노예가 되느냐, 피냄새가 진동하는 그 곳에서 끊임없이 쟁취하여 결국은 얻어낼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갈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악은 평범하다.'에 대하여.

[Talk & 樂] 허지웅 "악은 평범하다" 라는 영상을 보고나서 이 영상 의 댓글란에 나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사람이라면, 악행을 저지르게되면 언젠가 그에 응당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데, 악은 생각보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기때문에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조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혹은, 이런 게 아닐까? 옳은 행동이나 선을 행할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필연적으로 어떠한 걸 희생해야한다.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거나, 배신자로 낙인으로 찍히거나, 혼자 잘난 체하는 이상주의자로서 혹은 사회생활를 뭔지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아야 살아야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아마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악행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은연 중에 그것들을 감추려는 이유도 무엇가 희생할 용기와 결단이 없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혹은 선행을 했을 때의 손익과 악행을 했을 때의 손익을 계산했을 때 악행을 하는 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마치, 무의식적으로 악행은 나쁘다라는 걸 아는 것처럼 게임이론을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선행과 악행의 손익계산을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쓴 댓글을 다시보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히어로가 빌런을 필연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절대적인 나쁜 놈보다 절대적인 선한 놈이 되기가 휠씬 더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막말로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나쁜 놈을 떠올리기 쉬운가? 아니면 선하고 착한 놈을 떠올리기 쉬운가? 나는 아무리 해봐도 나쁜 놈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악행은 하기가 쉽다. 유혹에 이끌리면 되고, 상황과 흐름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좋은 상황보다 나쁜 상황이 더 많고, 필연적으로 나쁜 상황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악행은 관성에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선행은 자연스러운 관성을 이겨내 그 관성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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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이미지는 내 사파리의 즐겨찾기 목록이다.  그 중 두 개의 사이트는 원래는 더 위에 있었다. Back to the Mac와 Yoon Jiman 이 사이트들은 블로그다. Back to the Mac은 내가 2013년 여름에 처음 알게된 블로그였다. 전역하고 나서 새로 사게 된 Macbook pro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애플의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처음 새로운 접해보는 OS와 앱들 그리고 Windows와 전혀 다른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던 사이트들 중 가장 최고의 사이트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이 블로그에 접속할 때마다 애플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그 때의 그 감정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새록새록 떠오른 것 같았다. Back to the Mac의 원래 주인은 ONE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분이였다. 그 분은 자신의 매킨토시 사용기를 비롯해서 OS X으로 명명했었던 MacOS의 여러 앱들을 추천해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는 곳이였다. 또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 관한 이슈나 애플의 여러 정보들도 다루어 주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구독자들 중에서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고, 페이스북의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1년쯤 지났을까? 블로그 운영진들이 쓴 한 게시물 이 올라왔다. 갑자기 블로그 주인장인 ONE님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몇 개월 동안 운영진들이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돌아온 메시지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운영진들은 주인장이 없더라도, Mac과 iPhone을 사랑하는 유저로서 그리고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구독자로서 이 블로그의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운영진 모두가 각자의 생업이 있는 분들이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에 예전처럼 좋은 글들을 올라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때 뭔가의 상실감을 느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후, 예전처럼 자주는 게시물이 안올라왔지만 해

‘난세에 영웅이 난다.’가 아니라 ‘난세이기 때문에 영웅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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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를 보면 사라 코너와 존 코너는 심판의 날을 막았다. 그러나, 아무도 사람들은 그들이 인류를 구원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 미래에서 온 그레이스조차 사라 코너를 몰랐다.   오히려, 사람들은 사라 코너를 구원자가 아닌 정신병자나 미국의 최고 현상범이라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영웅’이나 ‘구원자’이라는 것은 평화나 질서 속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혼돈과 파멸 속에서 나오는 희망과 용기가 ‘영웅’이자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   평화와 질서의 세계에서는 영웅도 구원자도 단지,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다른사람들과 같은.   영화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인물들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질서의 세계에서 브루스 웨인은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최고 주주이자 돈 많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부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밤이 되고 혼돈이 가득한 세계에서의 브루스 웨인은 어둠의 무법자이며, 어둠의 기사가 된다. 또한 동시에 조커는 베트맨이 있기에 더욱 더 존재감과 희열을 느끼며 최악의 악행들을 저지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려고 한다.  다시 영화 <터미네이터>로 되돌아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 스카이넷과 리전은 필연적 존재이다. 그러니까 인류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하지 않았어도, 다른 천재가 나타나 만유인력을 언젠가 발견했을 것처럼. 문명이 발생한 곳에서 공통적으로 불이나 도구, 언어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거나 발명 혹은 발견했던 것처럼.  존 코너가 죽은 이유도 이런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존 코너는 스카이넷과 불가분의 관계으로 볼 수 있다. 존 코너와 사라 코너가 심판의 날을 막아서 스카이넷이 사라졌기 때문에 미래에서온 카일리스, 사라 코너와 카일리스의 아들인 존 코너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존 코너도 스카이넷

내가 존 내시의 ‘게임이론’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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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 이 이론이 굉장히 유의미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설득적으로 잘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사람을 굉장히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람을 바라볼 때 선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친절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말을 먼저 건네도 그것을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는 같은 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더라도 동네마다 버스를 타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말을 거는 게 자연스러운 동네가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는 동네가 있다고 한다. 참으로 웃긴 게 말을 거는 게 당연한 동네에서는 무심하게 혼자서 가만히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안거는 동네에서는 말을 거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단번에 설명해줄 수 있는 게 게임이론 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론의 보상체계는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1. 함께 협력을 하면, 둘 다 +2점을 보상받게 된다. 2. 한명이 협력하고 한명이 배신하면 협력을 택한 사람은 -1점, 배신을 택한 사람을 +3점을 받게 된다.  3. 둘다 배신할 하면, 둘 다 0점을 받게 된다.    위의 게임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각 구성원이 가진 전략과 그 구성원들의 수, 라운드의 갯수 그리고 의사소통의 혼선 에 따라 그 그룹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사람을 불신하는 게 생존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사회가 안정적이고 질서적이며 사회적 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서는 믿음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여러 관습이나 문화 등이 급변한 것처럼 전쟁과 같은 혼돈과 급작스러운 변화는 굉장히 많은 것들에 영향을 준다.  이걸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대인관계에서 부정적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사람을 기본적으로 믿지 않을 것이고, 긍정적인 경험

책임보다 권리를 먼저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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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있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들은 그냥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우리 선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러한 권리들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누군가의 희생에 대해 나는 나의 삶에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처럼 나는 그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떠한 권리도 책임도 가지지 않는 노예였을지도 모른다. 자유라는 것도 존엄성이라는 것도 어느 것들도 누릴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는.   노예는 누군가에게 저항할 힘도, 본인의 삶에 대한 책임도, 어떠한 권리도 없다. 그래서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책임보다 권리를 먼저 말한다는 것은 당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 벌써 도망갈 채비를 했다는 걸 의미한다. 책임을 말하지 않는 당신은 어떠한 것도 감내하지 못하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있어요.” 보다는 “나는 이것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라는 말이 더욱 멋있는 이유이며, 휠씬 더 숭고한 다짐과 외침이다.  

편안함에도 노력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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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솔직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지나치게 숨기는 것도 문제이다.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있어야 하고,  입에서 가물가물거리는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남녀관계에서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하게되면 벌어지는 것들

현실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외재적인 요인들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인 이유이다.  이 경제적인 이유는 각 개인의 기회비용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10km를 걸어도 아무런 상관없지만, 상대방에게는 10km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땀도 나고 냄새도 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것들이 꺼려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수단을 타는 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경제적이다. 왜냐하면 10km를 걸으면서 힘이 들면 짜증도 나고 감정적으로 나빠지기 하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기분을 안좋게 만들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돈이 들더라도 택시를 타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과 힘듦으로 인해 생기는 그 관계에 끼치는 부정적 요인에 대해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어떤 상황이나 제품 등에 대해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과 가치기준이 다르다. 이것을 본인과 똑같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단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현실적'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이유로는 허즈버그의 동기•위생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허즈버그에 따르면, 위생요인(불만족 요인)은 불만족 요인을 없애버리면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사라질 뿐 만족이나 동기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돈이 엄청 많은 부자는 불만족스러운 게 거의 없을 뿐이지 본인의 삶이나 여러 부분에 만족이나 동기를 유발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족이나 동기는 본인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외재적인 부분은 반드시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녀관계는 직장생활과 같이 사회계약적인 것이 본질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가장 먼저이고 본질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한 의사소통을 해야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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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햇살과 뜨거운 아스팔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 몸에 열이 충분히 달아오른만큼 걸은 다음 시원하게 샤워를 하니까 마음에 있었던 온갖 고민들이 사라진다.   내 몸과 세포들이 기억하는 좋은 기억들을 상기시켜주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도 내 몸을 따라가는 것 같다.  

규모의 경제학에서 시작된 나의 새로운 가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하는 각각의 제품에 투입되는 지출이 적어지는 것이 규모의 경제학이다.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학의 예시는 통큰치킨과 아마존이다.  통큰치킨이 일반 치킨집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를 가능한 것도 큰 자본력을 이용해 닭과 재료 등의 원자재의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경우도 인터넷을 이용해 각양각색의 소비자의 필요를 순식간에 파악과 동시에 처리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로부터 생긴 수익과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누수가 생기는 곳을 차단하고 더욱 더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하여 가격경쟁력을 갖추어 또다시 그 혜택을 곧스란히 소비자에게 갈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나타난 것이 '아마존 효과' 이다. '아마존 효과'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인플레이션의 시대에서 아마존은 거의 유일무이하게 물가를 낮추는 역할을 하였다.  규모의 경제학의 예시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있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디즈니에게 팔 때, 주식으로 픽사에 대한 값어치를 받았다. 그래서 그 당시 스티브 잡스가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그것도 스티브 잡스라는 개인 혼자서. 그래서 그는 디즈니의 최대주주인 만큼 엄청난 배당금을 수령했다. 1997년부터 매년 배당금을 4800만 달러(한화로 약 600억원)정도 수준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애플의 CEO로 돌아왔을 때에는 1달러만 받고 일을 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스티브 잡스는 취미로 아이팟, 아이폰, 맥북에어,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 등과 같은 혁신적인 것들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었다. 누구도 범점할 수 없는 열정을 가지고.  참고로, 스티브 잡스는 소탈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엄청난 부를 지니고 있었지만, 다른 부자들과 달리 보안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에게 있어서 집은 가족과 함께있는 공간이고 편안한 공간이어야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엄청난 돈

캡틴 아메리카는 항상 고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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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은 항상 고결했었다는 게 위의 이미지 를 보면서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자, 소름돋는 장면이 바로 캡틴이 직접 묠니르를 컨트롤해서 타노스를 한 방 먹이고 손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타노스의 핑거스냅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고결해져서 드디어 묠니르를 들 수 있는 자격을 주어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감독인 조스 웨던 감독과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감독인 루소형제 감독들의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시점부터 캡틴 아메리카는 묠니르를 들 수 있을 만큼 고결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캡틴 아메리카와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MCU의 멀티버스의 설정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처음 언급된 대체현실이라는 설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 기사 의 내용을 소개한다. Since Loki vanishes with the Tesseract, could he still be alive in the new timeline or would Cap returning the stones undo that?  AR: Loki could absolutely still be alive in an alternate timeline. 2023년의 어벤져스 멤버들이 양자영역을 이용해 2012년 뉴욕침공 사태 시점으로 돌아간다. 이 때, 테서렉트(스페이스 스톤)을 가져오려다가 복잡한 일들이 생겨 로키가 재치있게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테서렉트를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한다.  이 부분에서 꽤 많은 사람들은 로키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이 글 을 보면 내가 어떻게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설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가 제대로 알게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이 쓰여져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볼 수 있는 ‘의도와 결과’

아베노믹스의 대표적인 정책은 통화의 양적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해결하는 것이다. 통화의 양을 늘리는 것은 디플레이션의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출에 있어서도 예전보다 좀 더 이점이 생긴다. 하지만, 어떤 작용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반작용이 있다. 통화의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디플레이션을 해결한다는 의도나 목적을 가진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의 속내에는 환율조작을 통해 경제적 이윤을 만드는 것도 포함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는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 매우 당연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실제로 발생한 결과는 무시할 수 없다.   교육사회학에서 A+ 보고서라고 불리우는 ’콜맨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와 콜맨의 연구과정을 보면 의도과 결과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콜맨은 본래 연구계획은 보장적 교육정책이 효과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 연구에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를 하고 통계를 내보면서 그는 깨닫는다. 보장적 평등정책이 실제로 교육의 기회균등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처음 연구할 때 부정적으로 보았던 보상적(결과적) 교육평등을 펼쳐야한다고 보고서의 결론으로 쓰게 된다. 그의 보고서는 학술적으로 굉장히 신뢰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타당도가 높은 좋은 보고서였다. 표본도 엄청나고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또한 굉장히 정교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가 나오고 나서 교육 전반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불게 된다.  2010년쯤부터 이슈가 되고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이다.   A라는 주장은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현재 발생한 결과가 나쁘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기위해서는 인위적인 조정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B라는 주장은   결과에 대한 과대한 해석과 급진적인 실행은 본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저장하는 형태와 일관성의 관계

1년 이상 혹은 그 이상의 프로필 사진들을 삭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둔 사람은 대게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렇다.  배경화면이든, 남긴 글이든, 프로필 사진이든 새로운 사진으로 변경하더라도 예전의 것들을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조금 부족할지는 몰라도 본인의 모습들에 대해 만족을 하니까 지우지 않고 남기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관적이고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줄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반면, 아예 카카오톡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기본상태 화면을 유지하는 사람은 굳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하고 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을 공유하기 싫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부류의 속한 사람도 일관성있는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하기 때문에 피곤한 일을 만드는 일 자체를 하지않고, 그러한 일을 아예 만들지를 않을려고 한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은 자주 바뀌는데 예전의 사진들을 저장하지 않는 사람은 대게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본인이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게 분명히 있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반대하는 의견이나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주변의 거의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의 콤플렉스를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감추고 싶고 들키지 않고 싶은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또 자신의 멋진 모습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나약하거나 페르소나를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희한하게도 내가 만나는 친구들의 프로필사진을 보면, 첫번째나 두번째 경우는 있어도 세번째 경우는 거의 없다. 있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끌리는 경우도 비슷하다. 스스로에게 자존감도 높고, 분명한 자기 생각

착한 것은 선이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착하게 사는 게 선이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치관과 신념들에 대해 군 복무를 하면서 점점 의심을 품게 되었고, 대학교 졸업할 때 쯤에는 그동안의 내 신념들과 방향성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그것을 발견을 하더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 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내 고민들을 해결하고 도움을 줄 좋은 모델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이런 깊은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나름대로 버티고 있을 뿐, 그것들을 압도적으로 이기고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는 없었다.   반면, 간접적인 매체를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1Q84>, <해변의 카프카>, <스티브 잡스> 등과 같은 책에서 만났던 가상의 인물들과 실존하는 인물 그리고 그 책들을 쓴 작가들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들은 나에게 삶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부터도 많은 도움들을 받았고, 그 전에 알지 못햇던 것들을 많이 알게되었다.  그러다, 작년 말쯤부터 Dr. Jardan B. Peterson(이하 피터슨 교수)이라는 분의 여러 메시지들을 영상으로 접하게 되면서 방황하고 흔들리고 있었던 내 모든 것들이 점차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예전의 나라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할 수 있을거라는 분명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것들이 발현되는지 그 능력이 나에게 없더라도 적어도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촉과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이 분이 파편으로 조각된 모든 것들을 단번에 정리해주고 명쾌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서 그런지 이 분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가 되었고, 내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결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작품들의 오마주와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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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의 세컨드 임팩트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초반 분위기는 <에반게리온>에서 세컨드 임팩트가 발생한 후의 모습을 많이 차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반게리온>이 <어벤져스: 엔드게임>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이고 더 급진적인 스토리 진행이다. 하지만, 각 작품에 딱 알맞고 어울리는 상황과 이야기이라 나는 둘 다 좋아한다. 머리를 한쪽으로 묶은 사람의 운명 위에 있는 그림은 내가 알기로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에릭형제의 어머니인 트리샤 엘릭로 시작된 캐릭터적 요소로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자주 나오는 밈이다. 이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링크 에 있는 이미지와 위의 이미지를 비교하면 누구나 곧바로 이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워크래프트 3>의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대격돌 장면 ●  워크래프트 III: 레인 오브 카오스 - 오프닝 시네마틱 영상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시네마틱 트레일러   큰 두 세력이 맞붙는 장면이라고 하면 <워크래프트>를 빠질 수가 없다.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대격돌을 하는 장면이라고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워크래프트>의 그것이 아닐까 싶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어벤져스 및 와칸다 군대와 타노스의 부하들의 격돌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워크레프트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대격돌하는 장면을 꽤 참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역대급 대격돌 장면이였다. 특히, 미식축구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인상적이였다.  <인디에나 존스>가 원형인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의 추격씬 &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좋은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실패를 계속하는 스타트업이나 사람들의 공통점을 최근에 발견했다. 그들은 지나치게 혁신적인 것을 만들려고 무척 애를 쓴다. 사실, 사업이라는 것은 유의미한 수익이 발생하기만 하면 지속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혁신적이지 않아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표준원가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것도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에 투자한 것도 다 좋은 네트워크를 갖추기 위해서이거나 좋은 네트워크를 갖추었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네트워크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회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사람들 간의 연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상품과 시장 그리고 소비자 간의 여러 변수들을 정확하고 빠르게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네트워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유용한 것들을 합리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혹은 어떤 이에게 있어서 네트워크란 쓸모없거나 비효율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들만 남기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상 은 내가 네트워크의 중요성과 사업에 대한 관점을 넓히게 해준 영상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아재가 이야기를 참 잘하는 데 점점 이야기를 듣게 될 수록 이 아재의 내공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외부링크 [MAIN]"돈 5조원"을 펑펑 써본 사람! 누굴까? - 슈카월드 아재토크 라디오 망한 게임의 개발자들은 어떻게 될까: 게임 인간극장 [Life of a unsuccessful game developer] #29 스티브 잡스: 마케팅의 본질 스티브 잡스가 가장 강조했던 한 단어 [애플, 경영, 이유] [워렌 버핏] 대학생을 위한 최고의 조언_모두 이해하려하지마 쿠팡, 배달의 민족 투자자 한킴의 투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