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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ape.에 대하여.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bad ape라고 하는 새로운 유인원이 나온다. 이 유인원은 자신을 시저의 무리와 달리 동물원에서 탈출한 유인원이라고 소개한다. ape virus에 영향을 받아서 인간들이 하는 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bad ape가 시저의 무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다. 인간들이 나에게 (손가락을 바깥으로 향하게 행동하며) ‘bad ape’ (손을 돌려 자신을 가르키며) ‘bad ape’ 이 장면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불러주는 명칭이다. bad ape도 인간들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bad ape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어리숙하지만 이타적이고 굉장히 착한 캐릭터이다. 유인원에게 있어서는 bad ape가 아니라 good ape가 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bad ape가 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역설적인 이름이다.  인간에게는 bad ape가 되지만, 유인원에게는 good ape가 된다. 이 영화와 같이 인간과 유인원이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집단끼리는 어찌할 수 없는 관점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bad ape라는 캐릭터를 보자마자 나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본 캐릭터중에서 가장 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때에 수박을 떨어뜨려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내 지갑을 떨어뜨려 옆에 있는 사람을 당황할 만큼 굉장히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능숙한 모습이 없지만,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다.’라는 게 내 진짜 마음이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사람들이 나에게 “착한 것 같다.” “선한 사람인 것 같다 .” “순수하다.”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아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연금술사>중 한 장면이다.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군을 거역하지 마라. 금을 만들지마라. 사람을 만들지 마라.   였나요?” “그렇다. 군을 거역하지 말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겠지.”   “금을 만들지 말라는 건 경제적 혼란을 피하고자. 그럼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어째서 국가가 사람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겠나?”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겠죠. 연금술사들 사이에서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암묵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네. 윤리 나부랭이는 시대나 개인에 따라 변하는 법이야.   이유는 그런 게 아닐세. 개인이 강력한 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소장.” 이 하나의 장면이 정말 많은 것을 내포한다. 정말 훌륭한 작가, 만화가라는 것은 한 대목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면서 어떻게 군대에 직접 가지 않는 사람이 군대에 대해 잘 알고 인간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아는지 참으로 대단한다는 걸 느낀다. [1] 권력을 가진 사람에 따라 인간세상은 돌아간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취업난이나 경제, 과학이라는 현실과 거대담론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지배한다. 힘이 없는 개인은 이 거대체제에 대항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릴 때부터 정치효용감이라고는 전혀 느껴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만연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개인이 막대한 힘과 권력을 갖도록 하지 않기 위해 기득권 세력들은 수많은 장치와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길들여지고 어느샌가 초심을 잊어버린다. 그 순간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밖에 될 수 없다. 그들의 노예가 되느냐, 피냄새가 진동하는 그 곳에서 끊임없이 쟁취하여 결국은 얻어낼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갈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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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이미지는 내 사파리의 즐겨찾기 목록이다.  그 중 두 개의 사이트는 원래는 더 위에 있었다. Back to the Mac와 Yoon Jiman 이 사이트들은 블로그다. Back to the Mac은 내가 2013년 여름에 처음 알게된 블로그였다. 전역하고 나서 새로 사게 된 Macbook pro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애플의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처음 새로운 접해보는 OS와 앱들 그리고 Windows와 전혀 다른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던 사이트들 중 가장 최고의 사이트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이 블로그에 접속할 때마다 애플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그 때의 그 감정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새록새록 떠오른 것 같았다. Back to the Mac의 원래 주인은 ONE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분이였다. 그 분은 자신의 매킨토시 사용기를 비롯해서 OS X으로 명명했었던 MacOS의 여러 앱들을 추천해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는 곳이였다. 또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 관한 이슈나 애플의 여러 정보들도 다루어 주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구독자들 중에서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고, 페이스북의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1년쯤 지났을까? 블로그 운영진들이 쓴 한 게시물 이 올라왔다. 갑자기 블로그 주인장인 ONE님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몇 개월 동안 운영진들이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돌아온 메시지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운영진들은 주인장이 없더라도, Mac과 iPhone을 사랑하는 유저로서 그리고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구독자로서 이 블로그의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운영진 모두가 각자의 생업이 있는 분들이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에 예전처럼 좋은 글들을 올라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때 뭔가의 상실감을 느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후, 예전처럼 자주는 게시물이 안올라왔지만 해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마음을 비워낼 수 있다. 슬픔을 쌓아두고 상처를 덮어두는 게 아니라 슬픔을 퍼내야 상처가 치유된다. 바닥이 드러난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아플 만큼 아파해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다. 그래야만 지나간 사랑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별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시간이 그래도 좋았던 기억, 사랑받았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사랑을 부정했던 마음이 편안해져야 또 다른 사랑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잡는 연습만 해왔다. 어릴 땐 더 많이 먹기 위해 양손으로 먹을 걸 꼭 잡았고, 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엄마 손을 꽉 잡아야 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연필을 굳은살이 박이도록 잡았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튼튼한 줄을 잘 선별해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잡았던 걸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더 많이 잡기 위해 더 힘을 주었을 뿐이다. 정용실, 송윤경, 홍진윤, 김준영이 쓴 #언젠가사랑이말을걸면 중에서 #책속의한줄 — 2015년 7월 3일 내 일기장에서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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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햇살과 뜨거운 아스팔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 몸에 열이 충분히 달아오른만큼 걸은 다음 시원하게 샤워를 하니까 마음에 있었던 온갖 고민들이 사라진다.   내 몸과 세포들이 기억하는 좋은 기억들을 상기시켜주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도 내 몸을 따라가는 것 같다.  

연애를 하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  ●  ● 나는 오랫동안 이러한 착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하면 혹은 연애를 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대학교에 오면 내가 꿈꾸던 걸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열정 덕분에 열심히 살아보고 정말 하루하루가 좋았다. 근데 그것과 이 착각은 조금 다르다. 열정을 갖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과 착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자기와 맞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다른 것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과 무엇가 착각하고 있는 사람. 전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후자는 정말 뭐라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너무나 강한 신념을 갖는 것은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사람들은 경험을 해봐야 안다.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이니까 아니 어쩌면 자기자신이 선택한 길이기도 하니까. - 2018.04.03. 내 일기장에서

오늘 악몽을 꾸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엘리베이터가 계속올라가는..

권혁수 닮은 사람이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방에 올라가기위해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6, 17, 18, 19.... 계속 엘레베이터가 올라갔다. 거의 60층 가까이 내가 들어온 건물은 그렇게 큰 건물이 아닌데 이렇게 올라가는 건 말이 안되는 현상이다. 그것도 그냥올라가는게 아니리 점점 가속되면서 올라갔다. 그러더니 엘리베이터 통째로 건물밖으로 튕겨져나왔다. 도로 속으로 질주를 했다. 엄청난 속력과 함께 길에 걷는 사람들이 중 무고한 사람이 죽은 것 같았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에 치여서 결국엔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왔다갔다하다가 난 내 혀를 깨물고 말았다. 경찰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 할려고 했는데 잘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수상한 점은 경찰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은 혀를 갖고. 그런데 같이 탔었던 권혁수를 닮은 사람이 나를 저지하려고 했고 내가 갖고 있던 아이폰을 빼앗으려고 하고 내 말을 막으려했다. 그 순간 느꼈다. 이 사람이 나를 죽이려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까지. 그것도 무고하게 단지, 알 수 없는 증오심으로 죽이려하는 느낌이였다.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도 몸에 베어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다른사람을 헤치고, 피해를 주고 심지어 죽일려고 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살아남고 잘 되기 위해서. 난 이렇게,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어떠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이 작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그들의 의도나 마음가짐을 대충 느낄 수 있다. 오늘 꾼 이 꿈을, 이 메타포를 잘 간직하고 있자. 당분간은 - 2017년 3월 15일 나의 일기장에서 

잊고 있었던 느낌.

영풍문고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 횡당보도를 건너기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에 있는 초록색 치마와 난방을 허리에 묶는 소녀가 딱 눈에 띄었다. 누가봐도 새내기이거나 새롭게 단장을 한 20대 소녀였다. 굉장히 밝고 건강하고 활기찬 느낌을 저렇게 옷으로도 표현하고 그걸 본 내가 느낄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였다. 누구나 색채라는 게 있다. 그 색채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아무런 목적없이 일단 밖에 나가자라고 해서 한바퀴 걸어왔는데 그 새 나도 모르게 내 색채가 조금씩 바뀌었고 지금은 이런 색채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걸 느낀다. 젊었들 때 예쁘게 꾸미고 다니라고 어른들이 말한다. 나중에는 그것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말을 오늘 그 초록색 치마의 소녀를 보며 느꼈다.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지만, 그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낄까봐 멀리서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았을 뿐 그 이상하기에는 망설여졌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소녀도 나를 본 느낌이였다. 나를 멀리서 보고 조금 느리게 걷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 착각일뿐 실제로 그러한 것은 그 소녀만 안다. 나도 그 시기마다 뭔가 멋있게 보일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흑역사이고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행착오를 했지만 그때 그렇게 한 것이 후회는 절대 없다. 그 때 그렇게 했기에 배울 수 있었고 재미있는 기억도 있고 조금씩 다듬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혹은 누군가에게는 오늘본 초록색 치마를 입는 그 소녀처럼 멋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영풍문고에 들어가서는 문구쪽부터 천천히 보았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여러가지 문구와 물품과 그림들, 그 속에서 그것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러사람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보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