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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보다 권리를 먼저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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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있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들은 그냥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우리 선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러한 권리들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누군가의 희생에 대해 나는 나의 삶에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처럼 나는 그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떠한 권리도 책임도 가지지 않는 노예였을지도 모른다. 자유라는 것도 존엄성이라는 것도 어느 것들도 누릴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는.   노예는 누군가에게 저항할 힘도, 본인의 삶에 대한 책임도, 어떠한 권리도 없다. 그래서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책임보다 권리를 먼저 말한다는 것은 당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 벌써 도망갈 채비를 했다는 걸 의미한다. 책임을 말하지 않는 당신은 어떠한 것도 감내하지 못하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있어요.” 보다는 “나는 이것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라는 말이 더욱 멋있는 이유이며, 휠씬 더 숭고한 다짐과 외침이다.  

편안함에도 노력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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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솔직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지나치게 숨기는 것도 문제이다.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있어야 하고,  입에서 가물가물거리는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남녀관계에서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하게되면 벌어지는 것들

현실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외재적인 요인들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인 이유이다.  이 경제적인 이유는 각 개인의 기회비용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10km를 걸어도 아무런 상관없지만, 상대방에게는 10km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땀도 나고 냄새도 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것들이 꺼려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수단을 타는 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경제적이다. 왜냐하면 10km를 걸으면서 힘이 들면 짜증도 나고 감정적으로 나빠지기 하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기분을 안좋게 만들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돈이 들더라도 택시를 타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과 힘듦으로 인해 생기는 그 관계에 끼치는 부정적 요인에 대해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어떤 상황이나 제품 등에 대해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과 가치기준이 다르다. 이것을 본인과 똑같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단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현실적'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이유로는 허즈버그의 동기•위생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허즈버그에 따르면, 위생요인(불만족 요인)은 불만족 요인을 없애버리면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사라질 뿐 만족이나 동기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돈이 엄청 많은 부자는 불만족스러운 게 거의 없을 뿐이지 본인의 삶이나 여러 부분에 만족이나 동기를 유발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족이나 동기는 본인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외재적인 부분은 반드시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녀관계는 직장생활과 같이 사회계약적인 것이 본질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가장 먼저이고 본질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한 의사소통을 해야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마음을 비워낼 수 있다. 슬픔을 쌓아두고 상처를 덮어두는 게 아니라 슬픔을 퍼내야 상처가 치유된다. 바닥이 드러난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아플 만큼 아파해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다. 그래야만 지나간 사랑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별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시간이 그래도 좋았던 기억, 사랑받았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사랑을 부정했던 마음이 편안해져야 또 다른 사랑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잡는 연습만 해왔다. 어릴 땐 더 많이 먹기 위해 양손으로 먹을 걸 꼭 잡았고, 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엄마 손을 꽉 잡아야 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연필을 굳은살이 박이도록 잡았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튼튼한 줄을 잘 선별해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잡았던 걸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더 많이 잡기 위해 더 힘을 주었을 뿐이다. 정용실, 송윤경, 홍진윤, 김준영이 쓴 #언젠가사랑이말을걸면 중에서 #책속의한줄 — 2015년 7월 3일 내 일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