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명대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게 왜 이렇게 거슬릴까? 뭔가 빠져있다. 

나는 예전부터 어른들이 했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믿는 굉장히 순종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어른들 말씀따라 그대로 생각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 나..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른들 말마따나 열심히 해보고 노력도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나에게 안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특별히 나에게 무슨 의미나 유의미한 외재적인 보상이 오는 것도 아니였다. 단지, 남들이 하니까 하는 거였다. 

나는 그 순간부터 점차 이상함을 느꼈다. 어른들도 어찌할 도리도 없고 사실 보여주고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밖에 혹은 이 말 밖에 해줄 수 없고, 할 수 없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설에서 점점 진실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고나서부터 나만의 무엇가를 찾기위해 정말 애썼다. 이건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알려주지도 못한다. 직접 부딪치고 내가 직접 느껴봐야 깨닫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무런 자신만의 목적이나 의미없이 고통을 감내하고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파멸에 이끌게 한다”라는 걸. 

어른들은 어릴 때,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공포’나 ‘불안감’을 이용한다. “지금 이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준다”, “지금 공부 안하면 나중에 커서 ~~된다.”,  “남들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갈려면 남들이 잘 때에도 너는 열심히 공부해야 앞설 수 있다” 등등 이런 말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주어 어른들의 말을 잘 듣도록 겁을 준다. 

미안하게도 아이들에게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부모님이지, 알 수 없는 먼나라에서 루돌프와 썰매를 타고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나 ‘불안감’은 어른들에게도 잘 통한다. 대학교에서 재학생들이 신입생에게, 군대에서 신병에게 교육할 때에도,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도, 심지어 진급에 목메다는 대리님이나 팀장님도 이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면서 깨닫는다. “그 때 그 선배들 별거 아니였는데 왜 그렇게 내가 쫄았을까? 지금 내가 봐도 나는 정말 별거 아닌 놈인데 고작 1~2년 선배라고 그렇게 후배들에게 못되게 굴면 본인들 마음이 즐거웠을까?”라고. 

어릴 때에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이고 엄청나게 큰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고 경험하면 별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 심리적인 압박과 억압이 나를 더 힘들게 했지, 그 자체는 정말 별거 아닌 게 정말 많았다. 

이런 걸 경험하고 깨닫게 되니까 누군가에게 함부로 조언하거나 충고하는 것도 이제는 어렵다. 내가 내가 한 말처럼 100% 그대로 할 자신이 없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니까. 

그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면 나는 이런 말을 해줄 것 같다. 
“네가 의미를 느끼고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통을 감내하고 책임을 짊어져야 되.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가지지 못한다면 그건 안하는 게 네 몸이나 정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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