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생각인 게시물 표시

인터넷이 된다면, 기자가 될 수 있고 작가가 될 수 있고 프로듀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허핑턴포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블로그이다. 나는 허핑턴포스트가 BBC나 월스트리트 저널처럼 언론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블로그로 처음 시작해서 지금 그렇게 커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대세이고 열풍이다. 1년 수입이 왠만한 중소기업보다 괜찮은 수입을 자랑하는 대형 크리에이터가 등장하면서 너도 나도 유튜버가 되는게 요즘 대세이고 트렌드이다.  아마, 10년 전에는 블로그가 열풍이였고, 지금은 유튜브가 열풍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지금 이 시대는 자신이 원한다면 기자가 될 수 있고, 프로듀서가 될 수 있고, 연예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고, 취업을 했어도 생계라는 문제 때문에 매일매일 힘들게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투자할 수 있는 영역들이 옛날이 비해 정말 많아졌고 그 가능성도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내가 2년 전쯤부터 구독하고 보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계때문에 바쁘더라도, 열정이 있다면 글을 써서 업로드 할 수 있고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경제에 대해 가르칠 때,   ‘소비·저축·투자·기부’라는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 돼지저금통을 이용한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일을 해서 돈을 저축하고, 원하는 것을 구입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투자하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있게 해준 것들에 대한 보답과 감사함으로 어딘가에 기부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투자이다. 투자는 은행에 저축해서 이자를 통해서 얻어낼 수도 있고 혹은 부동산이나 주식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자본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기는 수익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과 같은 본인의 인적자본이라던가, 사람들과 함께 풍류하는 문화자본이나 사회적 자본 등을 통해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네이버와 다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

최근에 느낀 게 크다. 여러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여론조작이나 자신들의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콘텐츠들을 노출하는 것들이 요즘 너무 많이 느낀다. 가끔은 그들에 대한 혐오스러운 감정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참고로, 예전에 이 기업들이 싫은 이유는 단지 지나친 상술적인 서비스라던가, 검색엔진으로서의 본래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싫증과 거부감이였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짜 사용자의 경험이나 사용자 편의와 같은 것은 전혀 관심없고, 단지 UI/UX로 일컫는 상술적인 마케팅으로서의 도구일 뿐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행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지켜야 할 선을 이미 넘어갔고 그들 스스로도 그 심각성을 아직 잘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영상 을 보면, 2018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구글의 점유율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글이나 유튜브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2년 전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카카오톡의 ‘채널’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나눈 적 이있다. 편가르기, 혐오조장, 갈등조장 등 불쾌하고 지나친 네거티브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피곤함을 느낀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아예 카카오톡 채널에 뜨는 여러 게시물들이나 콘텐츠들이 뜨지 않도록하게 해주는 서비스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불쾌한 글들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것들로 인해 자신의 영혼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그에 대한 대체품을 찾아 다닌 결과가 이 영상 에서 보여주는 통계가 아닐까 싶다.  내가 블로그 서비스 중에서 네이버 블로그나 다음 티스토리를 선택하지 않고 구글의 블로거를 선택한 많은 이유들 중에 이것도 사실 포함된다.   그래서 나는 맛집 검색, 사전, 의약품검색, TV프로그램 검색, 꽃검색

블로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 뻔뻔한 그들의 모습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불리우거나 방송에 나와서 사람들한테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쓴 글을 보니까 “작가라고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닐려면 뻔뻔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   ●   ●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가나  철학계 혹은 심리학계 등과 같은 학계에서  인정받는 그런 분들의 수준에 나는 절대 도달할 수는 없다.   그분들 수준의 내공을 쌓을려면 나는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그분들처럼 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별 내공도 있지도 않고 글쓰는 솜씨도 형편없는데 신문사에서 글 쓴 경험이 있거나 몇번 책을 냈다고 사람들한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당당하고 포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저 정도 에세이를 쓰는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거나 방송에 나와서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신뢰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책을 출판하고나서 혹은 처음 방송에 나온 이후의 5년간의 행보 혹은 10년간의 행보를 보면서 엄청 실망을 한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그들의 글을 다시 보니까, 몇몇 글이나 책에서는 그들의 오만한 태도와 함께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허울좋은 소리만 하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출세와 실패의 차이는 거의 없다.   단지, 그 출세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보통사람들처럼 열심히 노력했고 어떤 진입장벽을 통과하기 위한 시험에서 운이 좋아 괜찮은 점수를 얻게 되어서 그들은 출세를 성공했다.  혹은 자신만의 인맥이나 연줄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유리한 위치나 정보를 통해 어떤 이점을 얻어서 그렇게 되었거나.   출세에 실패한 사람들은 단지, 컨디션이 안좋아서 혹은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을 했지만 운이 안좋아서 떨어진 사람이 대

고백을 먼저하면 본인이 더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서 (Feat. 게임 이론)

고백을 하는 사람이나 고백을 받는 사람이나 불리하고 유리한 게 없다.   보통, 사람들 중에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고백을 하는 게 더 용기를 내야하고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상대방의 생각을 어떤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소 리스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고백을 받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서 그 둘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백한 사람 못지 않게 고백을 받는 사람도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과 댓가가 따른다.   고백을 거절을 하더라도, 시원찮게 거절하면 오히려 고백한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품격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되었으니까.   고백을 하든, 고백을 받든 똑같다.   서로 간의 주고 받는 것들에 대해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각자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자신에게 그 결과가 돌아온다. 그래서 이는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손해나 리스크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놓치는 게 있다. 고백을 하면 자기가 손해가 많을 거라는 지레짐작을 한다. 실제로 해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왜 내가 그런 사람을 어리석다하고 말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 사람에게는 용기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게임 이론 등으로 설명 될 수 있는 큰 그림과 역학관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누군가가 용기내어서 한 고백을 가볍고 손쉬운 말로 내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따뜻한 말로 보다듬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과 소신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멋진 사람을 정말정말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게도 딱 한번 그런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좋은 기억과 경험을 만들어준 그 친구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 친구를 존경한다.   외부링크  게임 이론 G

3M은 알짜배기 회사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Design과 Problem Solving을 굉장히 잘하는 회사 중 하나라고 본다. 왜냐하면, 디자인으로 엄청나게 광고하고 홍보하는 회사들과 달리 3M은 구체적인 제품과 솔루션으로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허무맹랑한 혁신이니, 디자인씽킹이니 하는 허울좋은 소리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확실하고 명확한 제품을 보여준다.  만약, 내가 투자가라면 3M같은 회사에 투자를 할 것 같다. 왠만한 IT회사나 제조업 회사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실제적이고 확실한 제품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뭘 모르던 시절에는 포스트 잇이나 스카치테이프 만드는 회사라고 해서 번쩍번쩍한 IT기업이나 폼나는 회사로 보이지 않아 혁신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나는 뭘 몰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알짜배기 기업 혹은 야무진 기업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참고로, 내가 갑자기 3M에 대해서 인식과 시선이 달라진 계기는 아래 링크에 있는 전 세계 기업들의 시가총액 순위를 보고나서이다.  그리고 3M은 나이키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이다.  외부링크 미스터 캡 :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 미스터 캡: 전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 미스터 캡: 전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거나 꿈꾸는 것들을 하지 못한다고 혹은 지겹고 힘겨운 일상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무엇가 놓치고 있는 것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혹은 여행을 가본다고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나 스트레스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 본인 나름의 생각이 없다면, 단지 책만 읽었을 뿐 마음 속에 공허한 무엇가가 계속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혹은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고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인정, 눈치 같은 것들을 굉장히 신경쓰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 그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 본인이 그것을 정말 원하고 바란다면 그런 것들을 하더라도 별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안받겠지만, 남들이 하니까 하는 사람들은 상사의 요구나 자신이 해야하는 일들을 항상 고통스럽게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실하고 멀쩡히 일 잘하는 데 정작 본인은 그 일들을 하는 게 고통스럽고 괴롭다면, 잠깐만이라도 본인의 생각이나 욕구나 욕망 혹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천천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게 이런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말씀하는 것들을 성실하게 잘 듣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뻔하다. “큰 꿈을 가져라.”, “좋은 직장을 가져야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을 해야한다.”와 같은 말들을. 어쩌면, 힘겨운 일상을 살고 있는 것도 무언가 공허하고 괴로운 이유들 중 상당히 큰 부분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대게 착하고 어른들의 말들을 잘 듣는 사람이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말은 진리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부모님이고 배테랑 선생님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큰 꿈을 가져야만 한다는 신념도 그들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들

내가 이상형을 만들지 않는 이유

누군가가 자신의 이상형은 키가 180 이상 되어야 하고 연봉은 5000만원 이상이 되어야 하고 차는 네임드 외제차를 끌고다녀야 한다면서 은연 중에 나에게 자꾸 반복해서 말한다면, 그 사람이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이든 내 여자친구이든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는 이제 키가 다 커서 다시 태어나야만 키는 180이상이 될 것 같고, 아직 능력이나 커리어가 부족해서 그 정도 연봉을 벌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 되겠고 나도 물론, 멋지고 폼나게 외제차를 몰고 싶지만 굳이 빚을 내면서까지 그런 차를 타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나는 너의 이상형이 아니야. 네가 꿈꾸는 이상형을 만나고 싶다면 지금 나를 만날 시간에 너의 이상향에 가까운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만약,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몇 마디를 더 할 것 같다.   “나는 네가 꿈꾸는 그런 남자는 아니지만, 한 번쯤은 진짜 백마를 타고 왕자처럼 너에게 나타날 수도 있어.   한 번쯤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지만 키높이 신발이나 키가 커보이게하는 어떤 장치를 해서 키가 180처럼 보이게 나타날 수도 있어. 한 번쯤은 아주 폼나게 멋진 외제차를 끌고 너랑 같이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네가 꿈꾸는 그런 남자의 모습으로 항상 나타날 수는 없어.”  

편안함과 불편함의 관계

내가 편안하다는 뜻은 상대방이 어느정도 배려를 해준다는 말이다.  즉, 상대방이 나를 위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불편하다는 뜻은 상대방은 어떤 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내가 주는 걸 받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덜 움직여도 되고 무엇가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만약, 누군가에게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면 본인이 조금 불편하면 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는 꿈이나 신념을 가지는 순간, 남들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100가지의 말들을 했을 때, 10개정도의 거짓말 하면 그 사람은 허세라고 본다고 한다. 지나친 사람들은 20개 정도까지도.   그러나, 40개 50개 점점 그 갯수가 넘어가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게된다.   한편,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허세 수준을 넘어 본인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어른들의 말들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멋지고 큰 지위와 높은 자리에 있어야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아기 때문에. 자신은 남들보다 성공해야되는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들 중에 큰 요인이 하나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나 소중한 것들과   자신의 욕망들을 혼동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젠부터인가 나는 TV나 뉴스에서 자주 나오고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매순간이 남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휘둘릴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들을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자신의 부분들을 내놓아야 그 정도의 성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는 단지, 멋진 모습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그들을 동경하고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기 분수에 맞는 목표와 꿈을 가지는 게 건강하다.   자신이 한 끼에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자신이 지금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지루하지만   금세 싫증이 나지 않는 것들이 점점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대게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는 것들은 금세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이제 <해변의 카프카> 에서 등장하는 ‘오시마’라는 인물의 말에 점점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슈베르트는 훈련에 의

가끔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느껴봐야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 같다. 문뜩, 샤워를 하다가 내 수명이 한정되어있고 언젠가는 나도 죽는다는 사실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소스라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느낀다.   내가 이 경험을 처음 겪었을 때가 9살이였을 때이다. 어느날 친구랑 하교랑 하다가 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 말을 들을 때에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못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잘 못했다.   내 기억에는 친구에게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샤워를 하다가 하교할 때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죽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게 무(無)이겠지. 생각도 감각도 기억도 모두 다 사라지겠지.   이런 상상과 생각을 하다보니 그때의 나로서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것이였다. 그 상상을 하고 나는 바로 울어버렸다.   화장실에서 내가 갑자기 펑펑 우니까 거실에 있던 아빠와 엄마가 엄청 놀라셨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를 다독이며 왜 우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엄마, 아빠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 말을 들은 우리 부모님은 정말 당황하시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고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다독여주셨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얼른 그 생각 떨쳐버리고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셔라.”   그 때 이후로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 걱정끼치드리는 게 싫었다. 또한 내가 느끼기에는 부모님에게도 그 질문이 너무나 어려운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일 년에 2~3번 9살 때 처음 느꼈던 죽음에 대한 소스라치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나름대로 그 생각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들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물론 그 느낌을 들면 너무나 힘들지만, 삶에 대한 철학과

기본은 ‘쉽다’가 아니라 ‘중요하다’. (Feat. 오너 리스크)

내가 물리1·2를 배울 때 김성재라는 선생님께서 강조한 것이다.   물리라는 과목과 학문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기본이다.   기본은 모르거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심화적인 내용를 배울 수도 없고 제대로 공부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생님께서 자주 했던 말이 있다.   기본은 ‘쉽다’가 아니라 ‘중요하다’. 이는 물리라는 학문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전반적인 부분이 이 원리가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도덕성의 문제로 인해 대기업의 신뢰도와 주가가 떨어지고, 심지어 해당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불매운동까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최근에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이슈가 되는 뉴스나 소식들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이걸보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앞으로는 도덕성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됩니다.   도덕성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뭔가 우울해졌다.   예전에는 권력자나 부자들이 도덕성이 결여되고 어떤 법적인 문제를 일으켜도 권력이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 그 말을 한 사람의 의도인 것 같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로고스(논리)보다 파토스(공감)를 얻는 것이 어렵고, 파토스(공감)보다 에토스(사람의 됨됨이 혹은 그 사람의 행적이나 커리어)를 갖추는 게 어렵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거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사람들이 귀기울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다. 또한 논리적이고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이야기가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 즉, 메신저의 자질이 문제가 있으면 그 말 자체의 신뢰성이 무너지고 아무도 그 말을 듣지도 않고 믿지 않는다.   이제는

버닝썬 사건으로 보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에 대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인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그들의 팬들 중에는 그들의 편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연예인을 그 자체를 받아드리기보다는 자신이 원하고 기대하고 상상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투영하거나 투사하여 그러한 이미지만을 바라본다.   그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와서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새내기들에게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이고,   결혼하는 상대나 몇년 동안 본 애인이더라도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사람만을 만날려고 하고 그 사람과 심지어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러한 착각들을 엄청나게 했었다. 그리고 그 허황된 착각들 속에서 벗어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그 허황된 착각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인턴할 때에 만났던 친구가 정말 나에게 제대로된 반면교사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본인 셀피나 본인 나온 모든 사진을 지나치게 보정을 하고, 자신의 이성친구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만의 가치관과 기대를 지나치게 은연 중에 티를 많이 냈다.   내가 볼 때에는 그 친구는 지금 있는 그대로도 멋지고 괜찮고 좋은 사람인데 무슨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드리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그 인턴 기간동안 매일매일 만났던 그 친구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저런 모습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안좋고 결국 본인에게 가장 안좋다는 걸.   사실, 민낮의 자신의 얼굴이나 자신의 약점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싫을 수도 있고, 혹은 그렇게 했다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그에 대한 상심은 엄청나게 크니까.   그래도, 모든 사람

연애를 하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  ●  ● 나는 오랫동안 이러한 착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하면 혹은 연애를 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대학교에 오면 내가 꿈꾸던 걸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열정 덕분에 열심히 살아보고 정말 하루하루가 좋았다. 근데 그것과 이 착각은 조금 다르다. 열정을 갖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과 착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자기와 맞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다른 것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과 무엇가 착각하고 있는 사람. 전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후자는 정말 뭐라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너무나 강한 신념을 갖는 것은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사람들은 경험을 해봐야 안다.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이니까 아니 어쩌면 자기자신이 선택한 길이기도 하니까. - 2018.04.03. 내 일기장에서

“송구하오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이 보이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  ●  ● 심리학에서 ‘투사’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사나 생각 따위 등은 전혀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그 사람에게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로서, 대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행동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나 심리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사는 아무리 보아도 꼭 돼지처럼 생겼구려.”   이성계의 말에 무학대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습니까. 소승이 보기에 대왕께서는 부처님처럼 생기신 듯합니다만.”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다시 말했다.   “아니, 농담을 하자는데 그렇게 칭찬의 말을 하면 어떡하오.”   하고 타박을 하니 무학대사가 그 말을 다시 받았다.   “송구하오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이 보이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무학대사가 한 말은 지금까지도 정말 자주 쓰이는 클리셰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고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것처럼.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쉽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평상 시에 지닌 생각이나 태도, 마음가짐 등이 모두 그 사람이 하는 말로써 혹은 행동으로써 나타난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혼돈이기에 두 개의 폭탄 스위치가 반드시 눌러질 거라고 생각했고, 브루스 웨인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누구에게나 선한 부분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와 타인에 대한 믿음은 고스란히 자신의 품격으로 이어진다고 나

경제학자들은 왜 워렌 버핏처럼 되지 못할까?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직업과 업은 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변수들이나 상호작용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투자자 혹은 실력있는 투자자가 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워렌 버핏은 투자를 할 때, 거시경제학적인 관점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집중있게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변하지 않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야구에서의 좋은 타자를 비유하면서 투자를 얘기했다. 4할이 넘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올 때 스윙을 하는 게 공을 맞힐 확률이 높지, 자기가 좋아보이는 공이지만 2할 정도 확률을 가지는 공에 스윙하면 딱 2할정도의 확률로 그 공을 칠 수 있다.   이 것은 투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시험에서는 무조건 처음보는 문제를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보고 어려운 문제를 맞출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해당 과목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이자 문제들을 공부하는 게 현명하고 시험을 탁월하게 준비하는 방법이다.   투자의 원리를 시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원리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공부하는 게 효과적인 학습방법이지, 자신이 보기에 비전이 있고 미래가 있어보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이론들을 공부하는 것은 보통 학습자들이 하는 것은 좋은 학습방법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을 학자들과 같이 전문가들에게 맡겨두는 게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와 투자가가 다른 것처럼 과학자와 엔지니어도 다르다.   과학자는 이론을 엔지니어 혹은 기술자들은 실제 자신에게 주어진 현상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중점이다.   감독과 선수가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을 하는 것처럼 각자 하는 영역이 다르다.

그 사람은 그냥 관심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양하고 수많은 여러가지 변수들까지 생각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그렇게 복잡한 걸 생각하기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은 자신에게 충실하고 지금에 충실할 뿐이지. 굳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지나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아래에 링크를 걸어둔 영상에서는 브리 라슨에 대해 비판한다. 영상을 만든 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브리 라슨에게도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타인이 세심하고 고려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고해서 그 사람은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에 충실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온 영화를 보니까 충분히 오스카상을 받을 만한 이유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나온 영화를 보고난 후, 내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프레임이나 네거티브의 물살에 너무나 쉽게 영향을 받았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타인을 바라볼 때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생각없이 발언하고 무책임하게 타인에게 어떤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람이 되니까.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고해서 계속 가르칠려고 드는 것은 본인이 그렇게 외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중, 평등성, 포용성 등의 가치들을 내팽겨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스스로가 모순적인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주게 되는 꼴이 된다. 또한 어떤 타인에게 지나친 낙인을 찍거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네거티브와 같은 정치적인 언행은 반드시 그에 따른 반작용이 나타

이미 우리는 빅브라더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이미지
최근에 내가 개설한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에 대한 데이터들이다.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고로, 나는 이 정보들을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본다. 최소 구글 이상되는 기술력과 자본력을 가진 조직이라면, 어떤 개인의 여러 정보들을 보는 것은 정말 손쉬운 일이거라고 생각이 든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본인이 해먹으면 깨닫는 것들 중에 하나.

●  ●  ● 음식을 많이 먹겠다고 많이 해놓으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배탈이나고 또한 버려야하는 관계들이 더 많을 때가 있다.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지금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사람관계든, 공부든, 일이든 요리든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  ●  ●

수학이나 과학의 지식이나 방법을 사용해도 실제로 적용해보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되어야하는데 혹은 실험실에서는 잘 되었는데 막상 실제 사람들이 사용을 하거나 시장에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출시하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좁은 관점과 시야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효율적으로만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숫자로 혹은 과학적 현상이나 원리로는 현실에서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들을 다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고 적어도 그 문제의 원인들이나 어떤 균열들을 최대한으로 가깝게 끼워맞추고 채우기위해서 공학이나 경영학 등이 필요했고 그것들이 점차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론적 지식과 원리 등을 하나로 통합된 어떤 프로토타입이나 모델을 만들어 시장이나 어떤 상황에서 유의미있게 잘 적용되고 해결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한다. 이러한 것들을 하는 게 공학이고 경영학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하고 보완한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자 산출물이 흔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기술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의 기술, 강의하는 기술 등과 같은 것도 기술이고 어느 글로벌 기업이 만든 새로운 서비스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공계로 진로를 정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이러한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무조건 숫자로만 혹은 자신이 배운 이론들로만 세상을 분석하고 해결할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면 휠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그들은 왜 그렇게 고집만 부리는지 참 답답할 때가 있다.   아무튼, 생각의 프레임이나 틀은 생각을 유연하게 하기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것들로 인해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된 접근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산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고, 의미있는 모든 것들이 계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