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주의와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


어제, 어느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을 독신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쓴 책들을 굉장히 감명깊게 읽었었다.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1. 결혼식준비, 예물을 주고받고하는 것들, 가족들끼리 인사 등등 여러 허례허식들이 부담스럽다. 
  2.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그 주변인들로 인해서 고민해야할 것들이 많고, 그 주변인들이 요구하는 기대나 책임감이 정도에 지나칠 정도로 강요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싫다. 
  3. 사랑을 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결혼이 아니더라도 많다. 
예전에 나는 그 분이 쓴 책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이 되었고 만약, 그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되면 독신으로 살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연애를 하며 누군가와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더욱 더 둘만의 사랑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한 당사자 둘만이 아닌 그 주변사람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퍼트리고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결혼은 준비하는 과정부터 결혼하고 난 뒤에도 여러 힘든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나는 고통을 감내하고 좀 더 큰 책임감을 짊어 질 수록 더 큰 보람과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것을 최근에 느끼게 되었다. 보람이나 의미라는 것은 손쉽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리스크를 감내하고 나서 오는 더 큰 의미나 값진 것들이 돌아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느낀다면 나는 리스크를 감내하고서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리스크에 대한 반응이나 가치에 다르기 때문에 나의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이 생각은 단지, 나 개인의 생각일뿐이다. 

또한, 본인만의 의미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고 고통이나 책임감을 짊어지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굉장히 유의할 필요가 있고 항상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여러 비용이나 부담이 어른들이 말하는 그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세대별 혹은 사람마다 느끼는 부담이나 비용이 체감상 느끼는 게 다르기도 하고 또한 실제로 예전보다 많은 부분이 더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허즈버그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의 동기를 이끄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기요인이고 또 하나는 위생요인이다. 동기요인은 자아성취나 자신이 의미있는 것을 하는 것을 하기위해서 행동을 한다면 그 자체로서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기요인은 불만족이라는 감정과는 별개이다. 예를 들면, 고흐가 정말 어려운 형편에 있었어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끝까지 놓지 않고 삶의 끝자락에서도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신념과 행동은 동기요인이라 할 수 있다.  

위생요인이라는 것은 돈, 환경,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 등 이것들이 없으면 불편함이나 불만족을 느낀다는 요인이다. 그러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만족은 느끼지 않지만, 삶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위생요생은 만족이라는 감정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요즘 젊은 사람은 위생요인조차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기요인을 추구할 용기가 없어서 결혼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독신주의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안중근의 어머니가 안중근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읽고나서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어머니로서 자신의 아들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어머니로서의 무게와 책임이 얼마나 무거울지는 나로서는 상상이 전혀 못하겠지만 조마리아 여사의 메시지와 행동을 통해 삶의 의미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지 조금은 알게되었다. 

한편, 아이를 낳기 전이나 후에도 이런 비극적인 일어날지 조마리아 여사는 몰랐을까? 

내 생각에는 충분히 알았을거라 생각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미래에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더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들을 어머니로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히 선택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를 보면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가 오마주가 되어 떠오르는 것은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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