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ape.에 대하여.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bad ape라고 하는 새로운 유인원이 나온다. 이 유인원은 자신을 시저의 무리와 달리 동물원에서 탈출한 유인원이라고 소개한다. ape virus에 영향을 받아서 인간들이 하는 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bad ape가 시저의 무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다. 인간들이 나에게 (손가락을 바깥으로 향하게 행동하며) ‘bad ape’ (손을 돌려 자신을 가르키며) ‘bad ape’ 이 장면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불러주는 명칭이다. bad ape도 인간들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bad ape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어리숙하지만 이타적이고 굉장히 착한 캐릭터이다. 유인원에게 있어서는 bad ape가 아니라 good ape가 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bad ape가 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역설적인 이름이다.  인간에게는 bad ape가 되지만, 유인원에게는 good ape가 된다. 이 영화와 같이 인간과 유인원이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집단끼리는 어찌할 수 없는 관점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bad ape라는 캐릭터를 보자마자 나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본 캐릭터중에서 가장 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때에 수박을 떨어뜨려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내 지갑을 떨어뜨려 옆에 있는 사람을 당황할 만큼 굉장히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능숙한 모습이 없지만,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다.’라는 게 내 진짜 마음이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사람들이 나에게 “착한 것 같다.” “선한 사람인 것 같다 .” “순수하다.”

태어나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연애를 처음할 때에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그 사람에게 맞춘다. 처음이기 때문에 혹시나 실수할까봐 걱정도 하고, 의도치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다칠까봐 불안해한다. 연애를 처음할 때 경험하는 것들은 사람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겠지만,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가끔은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뭘 하더라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랫동안 성공하거나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할 때에는 그렇다. 생애 첫 연애라는 경험은 사람이 평생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자극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정말 강력한 감정과 자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들을 잃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연애처럼 큰 자극 받거나 자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왔을 때에도 이상하게 평소처럼 행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들 알겠지만 안간힘을 쓸수록 더 안된다. 연애나 사람 관계 혹은 사랑은 의식적인 노력 혹은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충분히 참고 기다릴 수 있고, 기분 좋은 배려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어떨 때에는 말이나 어떤 행동보다는 기다림과 침묵이 더 효과적인 소통방법이 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혹은 생애 처음으로 좋은 기회가 왔거나 한번의 성공이나 성취로 안정적인 궤도로 다가섰을 때에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보다는 적당히 힘을 빼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하나씩 해내면 된다.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고,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더라도 의식적으로 의연하게 하는 척 굴어야 한다. 불안함과 조급함에 휩싸이면, 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까.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아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연금술사>중 한 장면이다. “'국가 연금술의 3대 제한'. 군을 거역하지 마라. 금을 만들지마라. 사람을 만들지 마라.   였나요?” “그렇다. 군을 거역하지 말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겠지.”   “금을 만들지 말라는 건 경제적 혼란을 피하고자. 그럼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어째서 국가가 사람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겠나?”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겠죠. 연금술사들 사이에서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암묵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네. 윤리 나부랭이는 시대나 개인에 따라 변하는 법이야.   이유는 그런 게 아닐세. 개인이 강력한 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소장.” 이 하나의 장면이 정말 많은 것을 내포한다. 정말 훌륭한 작가, 만화가라는 것은 한 대목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면서 어떻게 군대에 직접 가지 않는 사람이 군대에 대해 잘 알고 인간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아는지 참으로 대단한다는 걸 느낀다. [1] 권력을 가진 사람에 따라 인간세상은 돌아간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취업난이나 경제, 과학이라는 현실과 거대담론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지배한다. 힘이 없는 개인은 이 거대체제에 대항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릴 때부터 정치효용감이라고는 전혀 느껴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만연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개인이 막대한 힘과 권력을 갖도록 하지 않기 위해 기득권 세력들은 수많은 장치와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길들여지고 어느샌가 초심을 잊어버린다. 그 순간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밖에 될 수 없다. 그들의 노예가 되느냐, 피냄새가 진동하는 그 곳에서 끊임없이 쟁취하여 결국은 얻어낼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갈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탄소강과 철-탄소계 평형상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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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Steel)은 역사에서도 ‘철기시대’로 따로 분류할 만큼 인류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재료이며, 지금까지도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철을 많이 사용하게 된 걸까? 약 75억년 전 초신성이 폭발한 뒤,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여러행성들이 형성되는 수 많은 과정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 를 통해 살펴보세요! 이 글 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에 사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뿐만 아니라 철은 재료역학적인 여러 이점들이 있었기에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많이 사용하는 원소이자 재료라 할 수 있다. 철이 온도와 탄소의 함유량 등에 따라 어떠한 재료역학적인 특성을 가지는지 아래에 있는 철-탄소계 평형상태도를 바탕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 철-탄소계 평형상태도 > 탄소강의 조직  1. 페라이트(α-Fe) ① α-Fe에 약간의 탄소만이 고용된 α고용체 [1] ② 최대 탄소 고용도는 723℃에서 0.02% ③ 연성이 크고 담금질에 의해 경화되지 않음 ④ 순철에 가까우며, 강자성체이고, 인장강도가 작음 2. 오스테나이트(γ-Fe) ① γ-Fe 속에 탄소를 고용한 γ고용체 ② 최대 탄소 고용도는 1148℃에서 2.11% ③ 전기 저항이 크고, 비자성체이며 인성이 큼 ④ 경도는 낮으나 인장강도에 비해 연신율이 큼 3. 시멘타이트(Fe3C) ① 철에 6.67%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는 금속간 화합물 ② 매우 단단하고 취성이 강하다. 4. 펄라이트(α고용체 + Fe3C) ① 0.77%C의 γ고용체가 723℃에서 분해하여 생긴 페라이트와 시멘타이트가 동시에 석출되는 공석 조직 ② 강도와 경도가 크고, 어느정도의 연성을 가짐 ③ 인장 강도와 내마모성이 강함 변태점의 종류 철의 변태는 결정구조변화가 없이 자성의 변화만 있는 자기변태와 결정구조 변화를 일으키는 동소변태 2가지

'악은 평범하다.'에 대하여.

[Talk & 樂] 허지웅 "악은 평범하다" 라는 영상을 보고나서 이 영상 의 댓글란에 나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사람이라면, 악행을 저지르게되면 언젠가 그에 응당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데, 악은 생각보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기때문에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조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혹은, 이런 게 아닐까? 옳은 행동이나 선을 행할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필연적으로 어떠한 걸 희생해야한다.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거나, 배신자로 낙인으로 찍히거나, 혼자 잘난 체하는 이상주의자로서 혹은 사회생활를 뭔지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아야 살아야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아마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악행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은연 중에 그것들을 감추려는 이유도 무엇가 희생할 용기와 결단이 없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혹은 선행을 했을 때의 손익과 악행을 했을 때의 손익을 계산했을 때 악행을 하는 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마치, 무의식적으로 악행은 나쁘다라는 걸 아는 것처럼 게임이론을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선행과 악행의 손익계산을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쓴 댓글을 다시보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히어로가 빌런을 필연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절대적인 나쁜 놈보다 절대적인 선한 놈이 되기가 휠씬 더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막말로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나쁜 놈을 떠올리기 쉬운가? 아니면 선하고 착한 놈을 떠올리기 쉬운가? 나는 아무리 해봐도 나쁜 놈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악행은 하기가 쉽다. 유혹에 이끌리면 되고, 상황과 흐름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좋은 상황보다 나쁜 상황이 더 많고, 필연적으로 나쁜 상황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악행은 관성에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선행은 자연스러운 관성을 이겨내 그 관성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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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이미지는 내 사파리의 즐겨찾기 목록이다.  그 중 두 개의 사이트는 원래는 더 위에 있었다. Back to the Mac와 Yoon Jiman 이 사이트들은 블로그다. Back to the Mac은 내가 2013년 여름에 처음 알게된 블로그였다. 전역하고 나서 새로 사게 된 Macbook pro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애플의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처음 새로운 접해보는 OS와 앱들 그리고 Windows와 전혀 다른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던 사이트들 중 가장 최고의 사이트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이 블로그에 접속할 때마다 애플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그 때의 그 감정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새록새록 떠오른 것 같았다. Back to the Mac의 원래 주인은 ONE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분이였다. 그 분은 자신의 매킨토시 사용기를 비롯해서 OS X으로 명명했었던 MacOS의 여러 앱들을 추천해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는 곳이였다. 또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 관한 이슈나 애플의 여러 정보들도 다루어 주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구독자들 중에서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고, 페이스북의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1년쯤 지났을까? 블로그 운영진들이 쓴 한 게시물 이 올라왔다. 갑자기 블로그 주인장인 ONE님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몇 개월 동안 운영진들이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돌아온 메시지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운영진들은 주인장이 없더라도, Mac과 iPhone을 사랑하는 유저로서 그리고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구독자로서 이 블로그의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운영진 모두가 각자의 생업이 있는 분들이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에 예전처럼 좋은 글들을 올라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때 뭔가의 상실감을 느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후, 예전처럼 자주는 게시물이 안올라왔지만 해